팬데믹 이전에 한국 영화산업은 총매출액에서 극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80% 정도였다. 비디오와 디브이디, 텔레비전 방영, 수출, 기타 수익을 다 합친 매출액이 나머지 20% 정도였다. 즉, 한국 영화산업에서 극장 이외에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른 경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성수기에 특정 영화가 지나치게 상영관을 많이 차지하면 다른 영화들이 개봉할 기회가 줄어드는 스크린 독과점 현상이 쟁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등장한 넷플릭스는 미국과 한국 영상산업과 문화에 각기 다른 영향을 끼쳤다. 원래 디브이디를 우편으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였던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환한 이후 미국에서는 비디오와 디브이디 판매와 대여 서비스, 그리고 유선방송과 경쟁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비디오와 디브이디 대여점 체인들이 몰락했고, 유선방송 유료채널 구독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이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산업은 팬데믹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그에 비해 디브이디 대여 서비스가 이미 사라지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와 극장이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승리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영화회사들은 넷플릭스에 방영권을 넘겨서 큰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많은 영화회사가 이렇게 빠르게 대응한 것은 아니다. 극장 위주의 수익에 의존하던 영화업계에서는 적극적인 투자와 제작을 시도하기 어려웠고, 넷플릭스를 위시한 외국의 국제적 OTT들이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주요 투자자로 등장했다. 그렇게 해서 오히려 영화뿐만 아니라 OTT 시리즈를 만드는 콘텐츠 회사들이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들로 인해 한국 콘텐츠는 급속하게 세계로 퍼졌지만, 한편으로는 장기적으로 제작비와 일부 수익만 받고 넷플릭스에 영화 판권을 넘기는 것은 추가 수익을 올릴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영화제작사들은 넷플릭스에 영화를 납품하는 하청업체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넷플릭스의 영향이 커질수록 산업 측면 말고 다른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착시현상이 생겼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콘텐츠를 접한 일부 외국 학자들은 학술대회에서 한국 콘텐츠에 관해 발표할 때 국내 플랫폼이나 방송국의 이름은 적지 않고 넷플릭스를 작품 제목 옆에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국내 학자 중에는 2000년대 초반에 성공한 한국영화의 걸작들이 아직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외국에서 한국영화가 인기가 없거나 넷플릭스가 한국영화에 관심이 없다고 간주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는 학자들이 넷플릭스와 OTT 이외에 극장 흥행이나 다른 부문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지 않고 성급하게 단정지어서 생긴 현상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국내외 학자들이 더 많은 연구를 하면 넷플릭스 이외에 다른 부문에 관한 정보와 지식도 늘어날 것이다.
노광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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