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생태 사전(윤구병 기획, 보리 사전 편집부 엮음, 보리출판사, 6만원)=보리출판사에서 펴낸 모든 세밀화 도감을 밑바탕으로 한 생태 사전이다. 우리나라 생물종 1602종의 세밀화가 실려 있다. 생물종을 골라 오랜 시간을 들여 세밀화를 그리고 정확한 과학 정보와 살림살이와 관계된 이야기를 담았다. 보리출판사는 1994년 50권짜리 ‘달팽이 과학동화’에 실린 세밀화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동식물을 한 점 한 점 세밀화로 기록해 왔다. 30여년 동안 이어진 세밀화 작업은 이제 3000종이 훌쩍 넘을 만큼 쌓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국립자연사박물관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한 세밀화 컬렉션이다. 출판사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사는 생물들 가운데 겨레와 가까운 생물, 살림살이와 중요한 관계가 있는 생물을 골라서 세밀화 도감으로 펴냈다.
신뢰는 어떻게 사기가 되는가(쑨중싱, 박소정 옮김, 세종서적, 1만8500원)=저자는 대만대학교에서 ‘사기의 사회학’이라는 강의를 개설하고, 오랜 시간 사회학적 시선으로 사기와 거짓말에 대해 연구했다. 이 책은 사기가 ‘믿음’이라는 인간 본성에 근거한 지극히 심리적 전술이며, 사기와 믿음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밝힌다. 저자는 거짓말이나 사기가 사악한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면접 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선택하여 말하는 소극적 거짓말 등 우리 역시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거짓말과 사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 저자는 사회학, 심리학, 철학, 역사, 고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토대로 사기와 신뢰의 관계를 분석하여, 신뢰가 사기로 변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해 준다.
한국에서 선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유미, 브레인스토어, 1만7000원)=한계와 제약을 딛고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로 쓴 여성 선수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박세리에서부터 올해 8월 프랑스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후 체육계 부조리에 관한 작심 발언을 한 안세영까지 여성 스타 29명을 조명한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3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임춘애에 얽힌 뒷얘기도 흥미롭다. 당시 그는 라면만 먹고 운동했다는 식으로 보도되면서 ‘라면 소녀’로 불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춘애를 지도한 김번일 코치가 ‘임춘애가 라면 먹고도 잘 달렸다’고 언급한 것이 집안이 어려워 라면만 먹고 달렸다는 식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제 커리어에 육아는 없었습니다만(이총희, 지식의날개, 1만8800원)=공인회계사이며 32개월 된 딸을 둔 아빠가 아기를 키우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2년간의 전업 육아 경험을 토대로 지적한다. 저자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돌봄에 지치고 노키즈존을 비롯해 아기를 동반한 부모에게 적대적인 사회환경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분노하기도 했던 저자는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순간 시위를 벌인 장애인 단체에 화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저자는 일과 가정의 양립, 육아와 일의 병행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젠더 트러블(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문학동네, 2만5000원)=2008년 한국어판이 출간된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으로 이번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됐다. 기존 번역을 전면 재검토해 오역을 바로잡고, 개념어와 용어의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을 대폭 다듬었다. ‘매트릭스’는 ‘모태’에서 ‘기반’으로, ‘서브스턴스’는 ‘본질’에서 ‘실체’로 바꿔서 번역했다. 이 책은 책은 동성애적 관점에서 주류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퀴어 이론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나를 위한 집(김윤선, 파롤앤, 1만8000원)=인테리어 노하우북이 아니라 집을 매개로 ‘나’를 찾도록 돕는 책이다. 나를 위한 집을 꾸미기 위해서는 우선 ‘나다움’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은 육체를 넘어서 공간으로 확장된 ‘나’이다. 집은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한 옷과 달리, 타인이 없을 때 머무는 공간이다. 이 책은 집을 꾸미는 여러 가지 기준을 함께 살펴 가면서 내 취향이 어떤 형식 속에서 완성될 수 있는지 깨닫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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