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의 기대 말고 대일외교 되돌아봐야
4개월여를 기다린 사도광산 추도식이 반쪽짜리로 끝났다. 일본 측이 개최한 추도식은 한국이 불참하며 빈자리로 남았고, 한국은 별도의 추도식을 개최했다. 추도식 전날 한국의 갑작스러운 불참 결정은 외교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지만,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온 정무관의 ‘추도사’도 아닌 ‘인사 발언’의 내용은 추도식의 의미를 퇴색시켰고, 그저 겉치레에 불과했다.
추도식에 대한 논의는 지난 7월, 한국이 일본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제동원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었기에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일본이 사도광산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당시의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전시실 등 추도시설을 설치하고, 매년 추도식을 개최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추도식은 그 부족함을 채우고, 사도광산의 명과 암을 모두 보여주며 일본의 마음을 담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4개월여 만에 개최된 일본의 추도식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정무관의 과거 발언과 행동은 추도식을 대하는 일본의 진의를 의심케 하였고, 추도사도 아닌 정무관의 ‘인사 발언’에는 정작 가장 위로받고 슬픔을 나누었어야 할 유족들과 희생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이들을 기리는 발언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국은 “양측이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려웠다”며 지난 4개월간의 시간이 무색한 입장을 내놓았고, 일본은 “정중히 의사소통해 왔으나, 한국이 불참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은 왜 만족할 만한 합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추도식 개최라는 결론을 내렸는가? 일본은 조건부 동의를 한 한국에 최선을 다했는가? 근본적으로 일본은 추도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추도식이 한·일 관계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인가? 심지어 현지의 분위기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주한일본대사관은 추도식 직전 유감을 표명하며, 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은 이쿠이나 정무관의 과거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도가 오보였음을 인정하는 기사를 내며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이었지만, 일본은 한국의 불참 결정이 단지 정무관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했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사실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조짐은 이미 군데군데서 나타나고 있었다. 니가타현 지사는 “사도광산 추도식이 세계유산 등재를 보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추도식의 의미를 변질시켰고, 이와야 외무상은 “지자체와 민간단체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개최하는 행사로 알고 있다”며 정부의 관여를 최소화했다.
말 한마디로도 크게 요동칠 수 있는 게 한·일 관계이다.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일본은 정말 몰랐던 것인가.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이번 ‘사도광산 추도식’에 임하는 일본의 실망스러운 자세는 여태까지 한·일 관계를 어렵게 끝고 온 사람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라도 한국의 대일외교 자세와 일본의 대한국외교 자세를 되돌아볼 때이다. 한국은 일본이 알 거라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임했던 것은 아닌가, 그들의 선의에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나.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미 다 끝난 문제라고 생각하고 진지한 반성과 성찰 없이 한국에만 맡겨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이번 추도식에서 드러났다.
일본에서는 종종 지난해 우리 정부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며, 우리 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말들이 들려오곤 한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가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함께 손을 잡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외교의 기본은 상대국과 상대 국민의 마음을 얻어 자국의 이익을 보다 높이는 데 있다. 일본은 한국의 마음을 얻고 있는가. 일본은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가?
일본은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쳤고, 일본의 성의에 기대했던 한국은 또 한 번 실망했다. 우리의 대일외교전략의 점검, 그리고 일본의 전향적 자세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디 이번 사태가 현재의 불안정한 양국 관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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