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데…
언제나 모든 장점을 먼저 찾아내
주변을 밝게하는 명랑한 리타처럼
빅토리아 토카레바 ‘어느 한가한 저녁’ (‘티끌 같은 나’에 수록, 승주연 옮김, 도서출판 잔)
가끔 리타라는 여성이 생각난다. 마치 예전에 알고 지냈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내가 리타를 떠올릴 때는 너무 아프고 힘든 일을 통과한 인물의 이야기를 읽고 났거나 나 자신이 인생과 내일을 낙관적으로 느끼고 싶을 때, 혹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좀 그러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 그렇다. 소설의 인물들은 다 이렇게 어둡고 우울하고 어떤 문제들을 껴안고 있어야만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그때 역시 리타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어느 한가한 저녁은 별장이 모여 있는 숲의 끝자락에서 안정과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어머니와 사는 리타의 집 주변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우선 버섯이 자라고 고슴도치나 다람쥐가 사는 그 지역의 장점부터. 단점은 비행장이 가까워 늘 굉음이 들리고 저공비행을 하는 비행기 때문에 집이 무너져 내릴 듯한 불안감이 든다는 것. 얼마 전에 집 근처에 연못이 생겨서 리타는 마을 사람들처럼 퇴근 후면 자주 그곳에 가서 수영하곤 했다.
공간을 보여준 후, 자신의 소설 대부분에서 명랑하며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러시아 현대문학의 거장인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이제 본격적으로 리타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그녀는 시내 살롱에서 피부 관리사로 일하는데 솜씨가 뛰어나고 자신의 손을 거쳐 살롱을 나가는 행복해하는 여성들을 일 년에 몇 명 더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세어보는 사람이다.
오늘 밤엔 어제 자신을 친절하게 태워다주었던 택시 기사와 연못 근처 큰 바위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와서 앉아 저쪽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연인을 보자 리타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 공업전문학교에서 성적이 뛰어났던 볼로쟈 생각이 났다. 그와 헤어진 건 볼로쟈의 할머니로 인한 오해 때문이었다. 꽃을 들고 연인의 할머니 집을 방문한 날,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할머니는 깐깐한 소리로 말했다. 질문은 자신이 할 테니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면 된다고. 당신은 미용실에서 일하나요? 네. 당신은 볼로쟈보다 세 살 많은가요? 네. 그럼 얘한테 원하는 게 뭐죠?
택시 기사, 고시카가 약속 장소로 왔다. 고시카가 무척이나 사무적이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때까지 리타는 알지 못했다. 고시카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랑은 자식을 낳기 위해 필요하며 태양도 매일 아침 자기 일을 하기 위해 하늘로 출근한다고 믿는 남자였다. 이 저녁의 만남이 그런 고시카에겐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는데 막상 리타를 만나고 보니 오해였다.
그럼 이 소설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지? 라고 궁금해질 때, 리타는 고시카의 눈을 보고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하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은 볼로쟈라고. 리타는 상상한다. 숨차게 달려가 그 집 벨을 누르고 어리둥절 해하며 문을 여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질문은 제가 할 테니 할머니는 듣고 네, 아니오, 대답만 하시면 됩니다. 할머니는 평생 단 하루라도 일 한 적이 있나요? 아니오. 할머니는 남을 한 번이라도 행복하게 해 준 경험이 있나요? 아니오. 그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죠? 그리고 리타는 그 문에서 나올 볼로쟈에게 말할 것이다. 사랑 없이 사는 데 지쳤다고, 화해하자고.
이제 밤이 와 이 지역의 “모든 결점이 감춰졌고 장점이 승리”했다. 사방은 조용하고 도로는 깨끗하고 숲에는 고슴도치와 다람쥐가 산다. 어쩌면 “덩치만 크지 착하고 시름에 빠진 동물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리타는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다. 택시 기사 고시카 덕분에.
공간이든 직업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이든 타인이든, 우선 장점부터 보려고 하는 리타. 소설의 어떤 인물은 오래도록 살아 때때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뭐든 단점부터 보일 때 한 번쯤 그녀를 호명해보고 싶어지는 것이겠지.
조경란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