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은 16년만에 4.0%→2.0% 반토막…1%대 진입 가능성도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내년까지 6년 동안 계속 잠재 규모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국제기구의 전망이 나왔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더 크거나 비슷한 주요 7개국(G7)과 비교해도 최근 같은 현상을 겪는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저출산·고령화·혁신부족 등의 문제가 겹쳐 한국 경제의 구조적 장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2020∼2025년 한국 실질GDP. 잠재GDP 수준 회복못해"
1일 한국은행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2001∼2025년 한국·G7 국내총생산(GDP)갭(격차)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5월 우리나라의 GDP갭(실질GDP-잠재GDP)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잠재GDP는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 경제 규모를 말한다.
GDP갭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특정 해의 실제 생산 수준(실질GDP)이 잠재GDP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국의 연도별 GDP갭율(실질GDP-잠재GDP/잠재GDP)은 ▲ 2020년 -2.5% ▲ 2021년 -0.6% ▲ 2022년 -0.3% ▲ 2023년 -1.0% ▲ 2024년 -0.4% ▲ 2025년 -0.3%로 추산됐다.
2001년 이후 2019년까지는 한국 GDP갭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우가 없었지만, 2020년부터 전례 없는 음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 이후 G7 국가에서도 GDP갭은 해마다 양수와 음수가 고루 나타나는 추세다. 다만 프랑스는 한국과 똑같이 2020년∼2025년 마이너스 GDP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됐다.
◇ "경기 사이클 문제라기보다 구조적 경기 침체 가능성"
전문가들은 경기 변동에 따라 실질GDP와 잠재GDP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양 또는 음의 GDP갭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상황을 이상적이라고 본다.
지나치게 큰 양수는 경기 과열 상태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를 반영하고, 반대로 큰 폭의 음수는 경기 침체, 높은 실업률 등과 관련이 있다. 생산 설비나 노동력 등 생산요소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음의 GDP갭(잠재GDP>실질GDP)이 쉽게 양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현실은 단기적 경기 하강이 아니라 장기·구조적 경기 침체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해당 국제기구가 우리나라 잠재GDP를 너무 과대평가했거나, 아니면 실제로 한국 경제가 잠재 규모를 못 쫓아간다는 뜻일 텐데,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질GDP가 잠재GDP를 계속 밑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하다는 얘기"라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규제나 정치 상황 등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제의 생산성 자체가 매우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경기 사이클(주기)의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구조적 스태그네이션(경기 침체)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추산 과정에서 과대 또는 과소 계상 문제를 살펴봐야겠지만, 일단 6년 연속 마이너스 GDP갭은 매우 좋지 않은 신호"라며 "체력에 비해 경제가 계속 너무 천천히 달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잠재GDP와 격차를 줄이려고 정부가 재정을 너무 많이 쓰고 한은이 금리를 빠르게 낮추면 재정 적자, 물가 등의 부작용도 우려되기 때문에 정책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 잠재성장률 24년간↓ 미국에 추월…영국·이탈리아·캐나다도 반등
한국 잠재GDP의 증가율, 즉 잠재성장률 관련 논란도 커지는 분위기다.
OECD는 2023년과 2024년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2.0%로 추정했다. 2022년 2.3%에서 1년 사이 0.3%포인트(p)나 깎였다.
더구나 OECD 추산 한국 잠재성장률은 2001년 5.4%를 시작으로 단 한해도 오르지 않고 모두 전년보다 떨어지거나 정체됐다. 2008년 4.0%가 절반인 2.0%로 축소되는데 1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G7 국가들의 잠재성장률은 오히려 최근 다시 상승하는 추세다. 2020년 이후 수년간 미국(2020년 1.9→2024년 2.1%), 캐나다(1.1→1.9%), 이탈리아(0.3→1.1%), 영국(0.9→1.1%) 잠재성장률이 높아졌다.
OECD 추산 결과에 따르면 결국 지난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2.0%)은 미국(2.1%)에 추월당했다. OECD의 24년간(2001∼2024년) 추정치 통계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G7 국가를 밑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미국 경제가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크고 성숙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충격적 사건에 가깝다.
이에 따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간담회에서 "한국이 3∼4% 성장률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미국도 2% 성장하는데 '일본처럼 0%대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소극적"이라며 "노동시장이라든가, 여성·해외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개혁하면서 장기적 목표를 2% 이상으로 삼고 싶다"고 강조했다.
◇ 한은 연말 새 잠재성장률 공개 예정…전문가 "1%대 가능성"
한은은 이번 제출 자료에서 조사국이 운영하는 4개 모형을 통한 자체 잠재성장률 추정 범위를 2021∼2022년 기준으로 '2% 내외'로만 공개했다.
OECD와 마찬가지로 한은 추정치 역시 ▲ 2001∼2005년 5.0∼5.2% ▲ 2006∼2010년 4.1∼4.2% ▲ 2011∼2015년 3.1∼3.2% ▲ 2016∼2020년 2.5∼2.7% 등으로 빠르게 낮아지는 추세다.
2019∼2020년(2.2%내외)과 2021∼2022년(2%내외) 추정치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변동성이 완화되는 시점에 다시 확정할 계획으로, 이르면 이달 새로 추정된 잠재성장률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까지 한은과 정부는 당초 예상보다 성장률이 낮다는 지적에 "약 2%인 잠재성장률을 넘기 때문에 나쁘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한은이 28일 수정 경제 전망에서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1.9%·1.8%)로 낮추면서, 경기 해석이 혼란에 빠졌다. 약 2%인 잠재성장률을 밑돌만큼 한국 경제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인지, 가능한 잠재성장률 자체가 1%대로 줄어 불가피한 저성장인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은의 새 잠재성장률이 기존 2%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안 교수는 "정부나 한은 입장에서는 잠재성장률을 너무 낮추면 경기에 대한 기대가 줄어 그 자체가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약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1.8%나 1.9% 정도로 줄이기는 줄여야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도 "인구 구조 트렌드를 보면 2% 정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화 때문에 점차 더 낮아진다는 게 일반적 견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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