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가 어려운 건 환자 본인이 아프다는 인식인 ‘병식’이 없고, 치료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발병 이후부터 병원 치료까지 ‘정신증 미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미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정신질환 증세가 악화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치료가 시작되고, 그 방법 역시 격리와 강박 등 강압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환자는 병원에서 경험한 강압적 치료가 트라우마로 남고, 치료에 반감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근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 산하 기관의 용역 연구개발(R&D) 성과를 발표하는 공청회가 열렸다. 핵심연구원인 김성수 정신과 전문의는 “만약 집처럼 당사자와 가족이 원하는 장소에서 상담이 가능하다면? 격리와 강박 등 심리적 외상을 주지 않는 치료가 가능하다면? 이 연구는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지난달 29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WHO 퀄리티라이츠에 기반한 치료친화적 환경조성을 위한 인권중심 중재기술개발 워크숍 및 공청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아주대학교병원과 이음병원에 용역 발주한 해당 연구개발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사람 중심, 권리 기반, 회복 지향으로 변혁하기 위해 고안한 퀄리티라이츠(QualityRights) 프로젝트에 바탕을 두고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진행됐다.
연구의 핵심은 정신질환자 당사자를 존중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비강압적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 내용은 크게 △지역기반 네트워크 미팅(오픈 다이얼로그) △병원기반 네트워크 미팅 △회복·퇴원계획수립 △고조완화기법 △동료지원 지원의사결정 서비스, 5가지로 이뤄져 있다. 자·타해 위험이 높은 정신응급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부드럽고 정중한 방식의 치료’로 정신질환자가 회복하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비강압적 치료의 구체적인 방법으론 ‘오픈 다이얼로그’가 제안됐다. 이는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을 치료 과정의 주체로 참여시키고 정신과 전문의와 간호사 등 전문가와 집단 대화를 통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논의하는 방법이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효과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3개월 내 재입원률의 5년(2018∼2022년) 평균은 35.4%에 달했지만, 오픈 다이얼로그 등 비강압적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음병원의 3개월 내 재입원률 5년 평균은 9.2% 수준에 머물렀다. 공동연구책임자인 정성권 이음병원 원장은 “많은 정신증 환자들이 비자의입원으로 최초의 정신과 치료를 경험하는 현황을 고려할 때 급성기 병동에서도 (이러한 치료법의) 적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증상 악화로 환자가 자·타해 위험이 있는 흥분 상태에 이르렀을 때 필요한 ‘안정화치료’를 인권 친화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치료진에게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연구개발에 포함됐다. 1999년부터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의 이요한 진료과장은 “격리가 이뤄지더라도 이후에 환자의 트라우마를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연구개발 내용은 전국 병·의원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성수 전문의는 “정책이 바뀌면 현장이 바뀌고, 현장이 바뀌면 당사자와 가족의 삶도 바뀔 수 있다”며 “정신응급 단계 이전 심리사회적 위기 단계로의 정책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이형훈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과 기선완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장 등 관련 정부 부처 담당자와 의료계와 법조계 연구자들,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등 약 150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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