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醬)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콩을 발효해 먹는 동양 문화권에서도 한국의 장은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전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방법이다. ‘장맛이 좋은 집에 복이 많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 ‘집안 사정은 장맛으로 안다’ 등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장 담그기는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큰 집안 행사였다.
장에 대한 첫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온다.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면서 납채(혼인이 이뤄진 증거로 신랑 측이 신붓집으로 보내는 예물)로 장과 메주를 보냈다. 왕실의 폐백 물품 중 하나로 장이 거론됐다는 것은 삼국시대에 이미 장을 만들어 먹었다는 방증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018년 현종이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눠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왕실에서는 장을 보관하는 창고를 두고 ‘장고 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가 그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한국 전통 음식 문화로는 2013년 김장 문화에 이어 두 번째다. 장이 채식과 발효 음식 문화를 가능하게 했던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라는 점을 인정받은 건 의미가 크다. 심사 과정에서 장 담그기가 지닌 공동체 문화도 주목받았다. 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며 “장 담그기 행위가 관련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스타 셰프들이 된장, 간장, 고추장을 활용해 기발한 음식을 선보여 전 세계의 화제가 됐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규민 한식진흥원 이사장은 “올해부터 2032년까지 발효 문화, 전통 한식, 제철 밥상, 유행 한식 등 4개의 테마를 주제로 30개 K미식 벨트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K팝, K무비, K드라마에 이어 ‘K장’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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