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법 프랑스 ‘12일 넘는 계엄은 의회 승인’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 현재 국회 계류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의결로 4일 계엄이 해제됐다. 일각에선 현행 법령상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계엄을 선포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해외 일부 국가처럼 국회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미법의 미국과 대륙법의 프랑스는 계엄 선포 절차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역임한 박종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06년 쓴 논문을 보면 계엄과 관련한 미국 연방 차원의 법은 모호하다. 한국처럼 헌법에 계엄과 관련한 내용을 두고 있지 않고, 관련 개별법도 없다. 이는 ‘시민적 자유의 제한을 수반하는 예외 상황을 미리 제도화’한 계엄을 제도화해 놓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에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뒤 의회가 사후에 이를 정당화하는 입법조치를 취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언뜻 한국과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미국에선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권한이 근본적으로 의회에 속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계엄선포 주체는 연방 대통령 혹은 주지사이지만 계엄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은 이들의 고유 권한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에선 계엄선포와 시행방법을 두고 법원의 사후 심사가 활발하다. 한국 대법원이 과거 박정희 정권의 계엄포고령 위반 사건을 두고 계엄선포가 통치행위이므로 법원이 심판할 수 없다고 본 것과 대비된다. 대법원은 2018년에야 당시 계엄 포고가 위법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정리하면 미국에선 행정부의 수장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지만 법령으로 이를 규정할 만큼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뤄지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적극적인 사후 견제가 가능하다. 또한 주마다 헌법과 개별법이 각기 다른데 메릴랜드주처럼 계엄선포를 금지한 곳들과 매사추세츠주처럼 계엄 권한을 의회에 일임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가 2020년 쓴 논문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계엄선포는 국무회의의 ‘법령’을 통해 선포하는데, 계엄 기간이 12일을 넘는 경우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 따라서 12일이 넘는 계엄에 대해 국회는 승인권을 가지고 통제할 수 있다.
입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와 행정부의 통제도 가능하다. 사법부는 계엄을 통한 행위들을 일반법원 혹은 행정법원을 통해 심사한다. 또 대통령 혼자 계엄을 결정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행정부가 계엄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각을 국회 다수당이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한국처럼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국회 다수당이 다를 경우 대통령의 자의적인 계엄선포가 더욱 어렵다.
한국과 해외의 계엄 관련 법령을 비교한 고 교수는 “국회의 승인권 인정과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효력 상실 등을 헌법과 계엄법에 규정함이 바람직하다”며 “계엄에 대해 사법적 심사가 (한국에서) 가능한가 하는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현행 헌법 및 계엄법에는 계엄 기간에 관한 규정이 없다”며 “(계엄이) 최단시간 내 취해지는 조치라는 점에서 최초의 기간을 일정 기간으로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 정권의 ‘계엄 시도’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9월20일 정부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최고위원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현행법에는 쿠데타적 계엄을 방지할 장치가 미흡하다”며 “법 개정으로 국민 불안의 씨앗과 계엄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에는 국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거나 계엄 종료 시점을 명시하는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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