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법의학자까지 데려와 치열한 공방…파기환송 깨고 징역 20년
2012년 12월 7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된 '만삭 부인 살인사건'의 피고인 의사 남편 백 모 씨(당시 32세)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원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을 때 법조계에서는 아내를 무참히 살해한 백 씨가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으나, 검찰은 다섯 달 동안의 철저한 보강 수사로 또 한 번 유죄 판결을 끌어내며 망자의 한을 풀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딸과 배 속 손주를 보내줄 수 없어 시신을 보관했던 아버지는 사망 후 약 270일이 흐르고서야 장례를 치러줄 수 있었다.
"아내가 욕조에서 넘어져 죽었어요…현장보존 위해 그대로 두고 배만 만져봤어요"
유명 사립 의과대학의 4년 차 전공의였던 백 씨가 만삭이었던 아내 박 모 씨(당시 29세)의 시신을 발견한 건 2011년 1월 14일이었다. 백 씨는 장모님에게 전화해 "아내가 욕조에서 넘어져서 죽은 것 같다"고 말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도착해서 본 아내 박 씨는 욕조에 기묘한 자세로 빠져 있었다. 박 씨는 욕조에 엉덩이를 걸친 채 바깥쪽으로 두 다리를 내놓고 있었다.
백 씨는 "집안에 침입 흔적은 없었다"며 "아내가 욕조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뒤로 넘어진 상황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날 밤 백 씨는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아내가 숨진 지 오래돼 보여 일단 현장 보존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그대로 놔뒀고, 태아가 살아있는지 확인하려고 배만 만져봤다"고 말했다.
아내가 쓰러진 모습을 보고도 일으켜 보지 않았다는 그에게 미심쩍은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백 씨의 이마와 양쪽 팔뚝, 등에는 상처와 긁힌 자국들이 있었다. 그는 "팔은 자다가 가려워서 긁었고, 등은 아내가 긁어주다가 상처가 났다"며 "이마는 열어둔 찬장 문에 찍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고사→타살→사고사" 계속 진술 번복
백 씨는 아내의 부검을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고려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검시 결과 아내의 몸 여러 곳에서 외상이 발견됐다. 목, 이마 쪽 피부가 까져 있었으며 눈 부위에는 찍힌 상처가 있었다. 또 입술 점막에 멍이 있었고, 뒤통수 아래쪽에서도 찍힌 상처가 발견됐다. 멍 자국은 팔, 손등, 다리에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박 씨는 얼굴에 피가 잔뜩 몰린 상태로, 기도 안쪽 점막에서 출혈이 관찰됐다. 이에 국과수 부검의는 '액사'(목 눌림 질식)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자 남편은 "누가 집에 침입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사고사에서 타살로 진술을 번복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백 씨가 의심스러웠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사고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영장이 기각되자 남편은 또 "사고사"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경찰은 포기하지 않았고 부부의 오피스텔을 샅샅이 뒤져 안방 침대에서 혈흔을 발견했다. 남편이 아내는 욕조에서 숨졌다고 했는데, 안방 침대의 혈흔은 아내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백 씨의 후드티 모자 끈에도 아내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백 씨는 "생활하면서 코피를 흘릴 수도 있는 거고 여드름을 짜줄 수도 있고 너무나 미세한 혈흔이었기 때문에 기억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아내 사망 후 휴대전화 지켜보면서도 '49통 연락' 다 무시
최초 검안 당시 아내의 사망 시간은 오전 6시~8시 사이로 추정됐는데, 아내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날 백 씨는 전문의 자격 1차 시험을 봤다. 백 씨는 시험을 잘 보지 못했고 이 때문에 그날 저녁 아내와 다퉜다. 시험에 떨어지면 병역 문제 때문에 아내, 곧 태어날 아기와 떨어져 지내야 했기 때문.
이후 백 씨는 저녁 8시 반부터 새벽 3시까지 게임을 했다. 이어 오전 6시 40분께 집을 나서 약 30분 뒤 학교 도서관에 입실했다. 평소 장모님에게 따로 전화를 건 적이 없는 백 씨는 이날 오전 9시께 장모님에게 전화해 "이번 시험이 조금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8시간 동안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당시 영어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박 씨가 출근하지 않자 직장 동료는 남편 백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도 사위에게 연락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는 49건이나 됐지만 백 씨는 전혀 답하지 않았다.
백 씨는 이에 대해 경찰 조사에서 "폰은 가방에 넣어둬서 못 봤다"며 "목도리로 둘둘 감아둬서 몰랐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이 조사해 본 결과 백 씨는 전문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같은 시간대에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자유롭게 주고받았다. 공부 때문에 휴대전화를 보지 않았다기에는 유독 이날만 전화를 안 받았던 것.
또 도서관 CCTV에는 백 씨가 낮 12시 반께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휴대전화로 추정되는 물건을 점퍼 주머니에 넣는 듯한 모습이 찍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목도리를 둘렀다. 백 씨의 진술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결정적인 건 아내 얼굴 상처의 핏자국 방향이었다. 욕조에서 발견된 아내의 얼굴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오른쪽 눈꼬리 핏자국이 오른쪽 바깥쪽으로 흘러 말라붙어 있었다.
경찰은 추가로 수사한 내용을 세세히 기록해 영장을 재청구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엄청난 비용 치르며 캐나다 법의학자까지 데려왔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한 남편은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으로 외국의 유명 법의학자인 마이클 스벤 폴라넨 박사를 섭외해 증인으로 내세웠다.
캐나다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폴라넨 박사는 "부검의 임상 경험은 어느 정도 되느냐" "국제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은 몇 편이나 되냐" "내가 부검했으면 이렇게 부검하진 않았을 것이다" 등 한국 법의학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며 증인들의 감정을 동요시켰다.
폴라넨 박사는 "사인은 액사가 아니라 이상 자세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사망 추정 시각이 정확하지 않고, 임신부는 빈혈 등으로 실신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백 씨 역시 자신의 의학지식을 총동원해 직접 증인들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아내와 자기 자식까지 죽인 남편, 끝까지 사과도 반성도 없었다
백 씨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한국 법의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건 발생 8개월 만인 9월 15일, 1심 재판부는 "부인의 목을 졸라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은 인정된다. 다만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백 씨에게 20년 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원심대로 20년형을 확정받았으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액사인지, 범인이 피고인인지 여부에 대한 치밀한 검증이 없이 유죄가 인정됐다며 좀 더 분명한 증거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백 씨의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5개월 뒤인 2013년 4월 26일, 대법원 2부는 증거와 논리를 보강한 검찰 쪽의 입증이 충분하다고 판단, 원심대로 징역 20년형을 확정판결했다.
박 씨의 아버지는 "사위나 사위의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고 했다면 이렇게 억울하고 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원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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