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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내 모든 작품은 사랑 향하고 있었다”

입력 : 2024-12-08 19:00:47 수정 : 2024-12-08 23: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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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서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

한국어로 30분간 작품 세계 회고
“작품 쓸 때마다 질문들 안에 살아
질문 끝 닿으면 비로소 소설 완성”

“2024년에 계엄 다시 전개돼 충격
무력·강압의 과거 되풀이 않기를”

10일 시상식… 스웨덴 국왕이 전달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은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진행한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어떤 질문 안에 살면서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한편의 소설 같았던” 강연 작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국어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빛과 실’이란 제목의 이 강연에서 한강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집필하며 근원적 질문을 가졌고 그렇게 다다른 곳에서 최근 발견한 것은 ‘사랑’이라고 밝혔다. 스톡홀름=AFP연합뉴스

한 작가는 이날 한국어로 진행된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1979년 여덟 살의 나이에 쓴 시에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이란 무얼까’를 묻기 시작한 이래 몇 년 전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로 나아갔다며 결국 천착해 다다른 곳에서 발견한 것은 ‘사랑’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고, 상자 안에서 일기장들과 함께 여덟 편의 시를 묶어 ‘시집’이라고 이름 붙인 종이들을 발견했다며 그 안에 적힌 시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은 그러면서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 안에 살면서 완성한다며 인간의 폭력과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새 작품으로 나아갔다고 고백했다. 그는 폭력성과 육식성을 거부하면서 채식을 하는 영혜의 이야기를 그린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시달렸다. 이러한 물음은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폭력으로 이뤄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와 ‘희랍어 시간’으로 구현됐다.

 

그의 질문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숨진 동호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면서 정점에 달한다. 그는 사건 발생 2년 뒤 ‘광주 사진첩’에서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과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봤다며 “인간이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강은 하지만 2∼3년 전부터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며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시의 질문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를 상기시킨 뒤 결국 천착한 것은 ‘사랑’이었다고 돌아봤다.

 

스웨덴 노벨박물관에 전시된 한강의 찻잔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찻잔과 메시지. 한강의 찻잔은 노벨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스톡홀름=뉴스1

한강은 이날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라고 집필 중인 작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특유의 잔잔한 어조로 30여분간 한국어로 강연하는 내내 300여명의 청중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강연이 끝난 뒤 현장에서 만난 청중 다수는 “한 편의 에세이, 단편소설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강은 하루 전인 6일 스톡홀롬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선 “지난 며칠 동안 아마 많은 한국분이 그랬을 텐데,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은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진행된 ‘노벨상 수상자 소장품 기증 행사’에서 옥색 빛이 감도는 찻잔을 미리 준비해둔 메모와 함께 전달했다. 그는 메모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였다. 그는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적었다. 한강의 찻잔은 노벨상박물관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며, 박물관 측은 한강이 소개한 사연을 추후 관람객들에게 안내할 예정이다.

 

‘수상 연설’을 마친 한강은 오는 10일 시상식 무대에 올라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에게 받을 예정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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