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훨씬 음악 즐길 수 있게 돼…작더라도 의미 있는 연주 하고 싶어”
“예전에는 큰 공연장에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게 행복했다면 지금은 작더라도 의미 있는 연주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신동 원조’로 손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44)에게도 세월이 지핀 인생·음악관의 변화가 묻어났다. 원숙미처럼 더 좋은 쪽으로. 사라 장은 9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렸을 때보다 지금 더 음악을 즐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내년 데뷔 35주년을 맞는 그는 10일 성남아트센터를 시작으로 29일 서울 예술의전당까지 전국 13개 도시를 돌며 연주회를 한다. 2022년 후배 음악가들과 함께 비발디 ‘사계’ 등을 협연한 그가 독주회 무대(리사이틀)를 갖는 건 2019년에 이어 5년 만이다. 브람스의 초기작인 소나텐사츠 c단조(F.A.E 소나타 중 스케르초)와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인 3번 d단조,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 D장조를 들려줄 예정이다. 10년 전부터 호흡을 맞춰 온 미국 피아니스트 훌리오 엘리잘데가 함께한다.
사라 장은 “연주를 마친 후 ‘오늘은 정말 음악적으로 완벽해서 행복했다’고 느껴지는 게 ‘의미 있는 연주’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느낄 때가 많지는 않아요. 협주곡이든 리사이틀이든, 연주뿐 아니라 너무나 많은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뿐 아니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멤버, 피아니스트 파트너와 호흡도 잘 맞아야 합니다.”
그는 특히 “정말 중요한 건 청중과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함께 호흡하는 것 같은 연주”라며 “그런 연주는 마법처럼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사라 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엄마가 ‘팬데믹(감염명 세계적 유행) 기간 처음으로 가족 생일, 추석 명절, 크리스마스 등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바쁘게 다녀도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가족과 함께하는 것과 연주 활동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도 여유로움이 아른거렸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매니저, 튜터(개인 과외 교사)와 함께 굉장히 바쁘게 다녔어요. 이메일도 없을 때라 팩스로 학교에 숙제를 보낼 만큼 복잡하고 바쁜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같이 연주하고 싶은 오케스트라, 듀오 파트너(짝꿍 연주자)와 사랑하는 레퍼토리 짜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서 예전보다 더 즐기면서 연주하는 것 같습니다.”
4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라 장은 9살이던 1990년 명지휘자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고난도의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하며 데뷔했다. 이듬해에는 음반사 EMI의 최연소 녹음 기록을 세웠고, 13살 때인 1994년 세계 최고의 명문 악단 베를린필하모닉과 협연했다. 쿠르트 마주어, 리카르도 무티, 마리스 얀손스, 사이먼 래틀, 구스타보 두다멜 등 거장 지휘자들과 한 무대에 섰다. 그라모폰의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 독일의 ‘에코 음반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이번 내한 공연에 브람스의 곡을 앞세운 것과 관련,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라면서 “브람스처럼 매우 로맨틱하고(낭만적이고) 마음을 흠뻑 쏟아낼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작곡가는 많지 않다. 저도 아주 로맨틱해서 나와도 잘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사라 장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 관객들이 특별하게 느껴져 감사한 마음으로 고국 무대에 선다고 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찾아와 따뜻한 환호를 보내줘 감사하고, 어느 나라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라는 점이 느껴져요.”
이번 공연에서 그의 목소리를 대신할 바이올린은 미국의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1920∼2001)이 쓰던 1717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다. 스턴이 사라 장에게 자신의 악기들을 보여준 뒤 “과르네리가 네게 잘 맞을 것 같다”며 사용해보길 추천했다고 한다. 사라 장은 “손이 작은 편인데 지금 쓰는 악기가 과르네리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편이라 저에게 잘 어울린다. 스턴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가 연말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공연예술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우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어떤 개인사가 있든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하면 음악 앞에서 단순하고 순수해지는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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