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차기 행정부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폴 앳킨스 전 SEC 위원을 지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앳킨스 전 위원을 두고 “상식적인 규제를 위한 검증된 지도자”라고 언급했다. 이어 “앳킨스 전 위원은 디지털 자산과 그 밖의 혁신이 미국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하게 만드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앳킨스 지명자는 2002~2008년 SEC 위원으로 근무했고, 이후 은행 및 가상자산업계, 금융거래 회사 등에 투자 등과 관련해 종합적으로 자문해주는 컨설팅 회사 패토맥 글로벌파트너스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했다.
가상자산 예찬론자인 앳킨스가 지명되자 지난 5일 오전(현지시간) 글로벌 코인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은 전일 같은 시간대보다 4.59% 급등한 10만181달러에 거래되며 사상 처음으로 10만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미 SEC는 한국의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기능을 하는 연방정부 기관이며, 대통령 직속의 독립 관청으로 준사법적 기능까지 가졌다. 원래 기능은 미 주식시장을 감시·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수사기관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열풍인 ESG(환경·사회적 책무·지배구조 개선) 금융 공시 및 기업 ESG 정책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글로벌 투자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트럼프 당선인은 같은날 백악관 무역고문에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을 재임명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추진한 강력한 관세·무역정책을 이번 2기에서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인데, 트럼프 당선인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그의 임무는 트럼프 (정부의) 제조업, 관세, 무역 어젠다의 성공적인 진전을 지원하고 의사소통이 되도록 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력한 무역·관세정책 구상을 다시 한번 천명한 셈이다.
나바로 전 고문은 대중 강경파이자 강력한 관세를 지지하는데, 1기 행정부 재임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도하는 등 한국의 대미 무역에 적지않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트럼프 당선인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는 불공정하고 잘못된 협정”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어 앞으로 나바로 지명자가 한미 간 다양한 무역 이슈를 강경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총괄할 상무 장관에는 하워드 러트닉 캔터피츠제럴드 CEO가 지명됐다. 또 실제로 무역 협상을 담당할 연방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는 제이미슨 그리어 전 USTR 대표 비서실장이 지명됐다.
러트닉 지명자는 공개 발언에서 “미국이 소득세가 없고 관세만 있었던 20세기 초 가장 번영했다”고 밝힐 정도로 트럼프 행정부 관세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그리어 지명자는 1기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의 심복으로, 라이크하이저 전 대표보다 강경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어 지명자는 1기 행정부에서 USTR 대표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NAFTA를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으로 대체하는 데 적지 않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과 중국 간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를 철회하고 중국산 제품에 강력한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찌감치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을 현장에서 진두 지휘할 ‘사령관’으로 하마평에 올랐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경제팀에서 유화적인 인물로는 지난달 22일 지명된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 후보자를 꼽을 수 있다. 베센트 지명자는 미 월가의 저명한 자산운용사 키스퀘어 그룹의 창업자이자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로도 유명하다. 그는 “(강력한 관세정책보다는) 인플레이션 등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차츰 수위를 높여가자”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베센트 지명자는 중국, 캐나다, 한국 등 주요 무역 상대국에서 그나마 말이 통할 수 있는 상대로 기대하는 인물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4일 K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국내에서 가상자산 시장 거래대금이 증시 규모를 넘어선 것과 관련해 “두 시장을 놓고 보면 주식시장으로 돈이 와야 한다”며 “시장 자체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불공정 거래가 있는 것 아니냐에 중점을 두고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2022년 테라-루나 폭락사태를 직접 겪은 한국 정부로서는 가상자산과 관련해 신중함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차기 미 SEC와 정책이 현저하게 배치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한국 자본시장에서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지지부진한 상황인 만큼 한국 증시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시장 혹는 미국 증시로 대거 빠져나가는 사태를 걱정하기는 의견도 있다.
1900조원에 가까운 국내 가계부채 규모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고, 내수 소비마저 현저히 줄어 지난해 폐업한 법인이 약 100만 곳에 육박하는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과 최근 국내 정치 상황 등에 따른 우려로 환율 역시 상승세를 타고있는 점도 걱정거리다. 환율 변동으로 기업의 외화예금 인출이 늘면 은행의 유동성이 줄고, 이로 인해 은행의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00%로 0.25%포인트 내렸지만, 적절한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은은 2025년과 2026년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를 각각 1.8%로 예상, 장기 저성장의 경제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우리 금융권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추진하는 ESG 정책도 실제로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의 경제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한국만 순진함에 빠져있는 셈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및 국제 금융·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할 한국 경제팀의 면밀한 점검이 절실한 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6일 “정치적 불안 상황과는 상관없이 (한국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은 지속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여기에 하나 더 제안하고 싶다. “글로벌 경제흐름뿐 아니라 미국 및 EU 정치상황을 좀 더 면밀히 공부하고 대응하자”는 의견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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