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각 130여점서 묵서 발견
“16C까지 용왕 제사 유지된 듯”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백자에서 ‘용왕’(龍王), ‘졔쥬’라고 적힌 글자가 처음 확인됐다. 이는 신라시대에 올렸던 용왕 제사가 신라 멸망 뒤 적어도 16세기까지 월지 일대에서 유지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75~76년 발굴한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품을 재정리해 종합 연구한 결과 조선시대 자기 조각 130여점에서 다양한 묵서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묵서는 먹물로 쓴 글씨다.
새로 확인한 묵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용왕’ 글자다. 박물관이 수장고에 있던 자기 조각 8000여점을 조사한 결과, 16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백자 가운데 ‘용왕’이라는 글자가 적힌 조각을 여러 점 확인했다. 글자는 대부분 밑바닥에 붙은 받침인 굽 부분에 적혀 있었다.
학계에서는 신라시대 월지에서 용왕 제사가 거행됐을 것으로 본다. 과거 동궁과 월지에서 ‘신심용왕’이라 적힌 토기가 출토됐고, 삼국사기에 용왕전이라는 관부가 있었다고 기록된 점이 근거다. 이현태 학예연구사는 “신라 멸망 뒤 월지 일대가 폐허처럼 변하면서 용왕 제사도 사라진 것으로 여겼는데, (이번 연구로)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월지가 용왕과 관련한 제사 또는 의례 공간으로 활용됐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제사의 주재자를 뜻하는 ‘졔쥬’로 볼 수 있는 한글 묵서도 이번에 확인됐다.
출토품에는 또 ‘기계요’ ‘개석’ ‘십’ 등의 글자도 적혀 있었다. 기계요는 오늘날 포항시 기계면 일대의 가마에서 생산된 자기를 의미하는 글자로 추정된다. 당시 자기가 어떻게 유통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다. 이번에 확인한 ‘졔쥬’나 ‘산디’ 등 한글로 적힌 묵서는 당대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중요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현태 연구사는 “16세기 백자의 굽 부분에 남겨진 묵서는 조선 전기 경주 지역의 생활상은 물론 월지가 갖는 의미 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통일신라시대 월지 주변 건물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조각에서도 글자가 확인됐다. 문의 모서리 부분을 마감한 띠쇠로 추정되는 금속 장식에는 ‘내간’이라는 글자가 두 번 새겨져 있었다. 박물관은 또 처마 서까래나 난간의 마구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금동 판에 새겨진 글자를 새로 판독해 ‘의일사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글자들은 발굴 후 약 50년 만에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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