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은 초기 연구 단계를 넘어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기술 성숙도를 표현하는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의 마지막인 생산성 안정 단계(plateau of productivity)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 기술은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거쳐 현재 생성형 AI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AI 기술 활용 의료기기로 대표되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발전 가능성도 확인됐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각각 300개 이상과 700여개의 AI 기술 활용 의료기기 제품을 허가했으며, 그 제품 수는 계속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신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가는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가 기술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규제가 정립되면 기술 발전이 산업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최근 디지털 혁신이 폭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에 대한 규제와 기술 간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따라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혁신을 장려하고 환자에게 혁신 기술의 혜택을 적시에 전달하기 위해 AI 기술과 관련한 정부의 규제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혁신적 기술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화가 동반되어야 하며 산업화를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시장과 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업화 여건이 제한적이고 시장 규모와 자본 측면에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불리한 실정이다. 이에 우리 기업의 성장에 있어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AI 의료기기 특성상 각 국가에서 제품별 검증자료를 요구하고 있어 비관세 장벽인 규제와 관련된 정부의 역할 역시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국내 의료기기 안전관리 제도 우수성을 인정받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s Forum, IMDRF) 의장국으로 선임됐다. 이후 개최한 규제당국자 회의를 통해 국가 간 협력 강화 필요성과 향후 새로운 규제 변화 등에 대한 논의를 주도해 디지털 의료기기에 대한 국제 규제 조화 및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식약처와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은 11일 양국의 임상시험자료를 상호 인정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AI 의료기기 임상시험 지도 지침’을 공동 개발해 발표했다. 이번 공동 가이드라인은 제품의 임상적 효과와 한국·싱가포르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AI 의료기기가 양국의 시장 진입을 원활히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 정립과 상호인정 기반 마련은 AI 기술 기반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에 이바지할 것이며,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의료기기 산업의 수준은 규제의 수준에 수렴한다고 한다. 의료기기 규제를 국제 조화하고 혁신함으로써 신성장 동력 산업의 핵심인 AI 기반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이 촉진되기를 기대한다.
이호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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