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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란 무엇인가 보여준 ‘지우학’… 동굴에 갇힌 경기도의회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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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19 18:48:11 수정 : 2024-12-19 18: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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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탄핵 여파에 도의회 마비…의장단 ‘무능’ 드러내
표면상 ‘사무처장 사퇴’ 갈등…속내는 金 지사 겨냥
민주·국힘 76명 동수…민주당이 전·후반기 의장 독식
본회의 ‘계엄 비판’은 봉쇄…유호준 의원 사직서 제출
‘협치의 전당’ 사라져…野, 지난달 의장 불신임안 제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서울 근교의 한 고등학교는 아수라장이다. 서로 살점을 물어뜯은 학생들이 학교 넘어 도시 곳곳까지 삽시간에 퍼지면서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결국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다. 국가가 존폐의 갈림길에 내몰릴 때 선언한다는 바로 그 계엄령이다. 

 

2022년 1월 OTT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시리즈물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떤 상황에서 계엄령이 선포돼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에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초유의 상황에서 휴대폰도, 식량도 없이 방치된 학생과 시민이 필사의 사투를 벌일 때 정부가 취하는 긴급 조처로 묘사됐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무관심이 만든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2022년 1월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추경·예산안 처리 불투명…내년 ‘준예산 사태’ 갈 수도

 

‘12·3 비상계엄’ 여파로 예산심사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경기도의회가 이어진 여야 갈등으로 결국 파행했다. 계엄·탄핵 정국이 불러온 갈등이 중앙 정치권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계엄 사태에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은 김동연 지사에 대한 보수 야당의 반발과 중재 기능을 상실한 도의회 집행부의 무능이 자리한다. 경기도는 의회 파행으로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물론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역시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경기도의회는 19일 오전 정례회 본회의를 앞두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가 중단되면서 난항을 겪었다. 본회의에선 5분 발언만 진행됐고, 안건 상정이 이뤄지지 못한 채 산회했다. 전날 김진경 도의회 의장과 여야 대표, 수석, 예결특위 위원장 등 7명이 회동했지만 이견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도의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유호준 의원의 사직서 제출은 최근 드러난 도의회 난맥상을 방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2022년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계엄·탄핵 정국을 둘러싼 지방 정치권의 혼란을 보여주는 듯 하다. 넷플릭스 제공

유 의원은 이달 13일 입장문을 내고 “도의회 의원으로 더는 활동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도의회 본회의에서 계엄 관련 신상 발언이 거부됐다는 이유로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문에선 “의장단 개회사는 ‘최근 비상계엄 문제로 인해 사회가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에 불과했다”며 “저는 도의회의 이러한 입장에 아무런 일 아닌 것처럼 자리를 지키며 의정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본회의는 국민의힘 소속 부의장이 진행했다. 

 

예산 지연 사태의 표면적 이유는 김종석 도의회 사무처장의 사퇴 여부이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도의회 야당인 국민의힘은 양당 대표가 합의한 사무처장 ‘사퇴’를 여당이 말을 바꿔 ‘사의 표명’으로 축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합의된 의사일정 정상화에서 한발 물러섰다. 

 

국민의힘이 위원장인 의회운영위는 지난달 27일 사의 표명 후 사직서를 내지 않고 병가 중인 김 사무처장에 대해 업무 태만 등을 이유로 해임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바 있다. 김 지사의 인사와 정책에 반발해온 국민의힘 도의원들이 정례회 등원을 거부하다가 첫 개방형 사무처장에게 칼날을 돌린 셈이다. 사무처장의 거취가 민생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이 지난달 6일 김진경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제공

이처럼 속내는 도의회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김 지사 견제에 쏠려 있다. 김정호 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은 “(계엄사태 이후) 도지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러 말을 외치는데 도정이나 잘 챙겼으면 좋겠다”며 “준예산으로 넘어가면 도지사만 힘들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잠정 예산을 짜는 준예산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도 집행부를 압박한 것이다.

 

야당은 지난달에는 김진경 의장을 겨냥해 “도의회 대표자라는 지위를 망각한 채 민주당 대표자로서 편파적 의회 운영을 일삼는다”고 비난한 바 있다. 당시 의원총회를 연 도의회 국민의힘은 “후반기 운영은 파행과 함께했으며, 의회 본연의 기능인 견제·감시 역할이 철저히 무시됐다. 이런 상황에서 의장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건 중대한 문제”라며 의장 불신임안까지 제출했다.

지난달 5일 열린 경기도의회 본회의장 곳곳에 빈 자리가 드러나 있다. 이날 대집행부 강경투쟁을 선언한 도의회 국민의힘은 등원을 거부했다. 경기도의회 제공

◆ 野 “후반기 도의회 파행…의장 아무런 역할 못 해”

 

실제로 민선 8기 하반기 도의회는 곳곳에서 보이콧을 외치며 지뢰밭을 걷고 있다. 민의를 떠받치는 협치의 전당은 시험대에 올랐고, 의장단의 정치력과 협치 역시 사라진 지 오래됐다. 심지어 ‘전과 논란’을 불러온 김봉균 경기도 협치수석 논란도 지난달 도의회를 흔드는 데 일조했다.

 

도의회 집행부와 민주당은 “파행을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도의회는 지난달 도지사 정무라인 등을 비난하며 의사일정을 보이콧한 국민의힘 때문에 올해 행정사무감사 일정이 일부 틀어졌다. 현재 도의회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각 76명, 개혁신당 2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 경기도의회 제공

‘점입가경’의 갈등이 번지는 동안 자체 조직권이 없는 도의회는 ‘밥그릇 챙기기’, ‘월권’ 논란에 빠지기도 했다. 최근 도의회 기획재정위는 의정지원담당관 신설 등 4·5급 직원을 증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수정 의결하는 과정에서 권한 밖 행동을 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도가 제출한 개정안은 직원 6명 증원안이었는데, 도의회가 도 집행부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5급 이하 직원 4명을 추가해 모두 10명을 증원하도록 내용을 바꾼 것이다. 도는 권한·절차상 하자를 들어 이 같은 내용의 조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는 입장이지만 도의회 측은 과거 사례 등을 들어 “가능하다”며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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