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애민정신 투철한 양질의 정치인 양성해야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상실한 지 두 갑자를 지나는 동안 우리는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는 지금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자멸의 길을 가고 있다. 헌정사에 단 두 번밖에 없었던 탄핵이 윤석열정부에 들어 20여번이나 난무하더니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2시간 만의 해제 그리고 불과 8년 만에 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변에 휩싸였다. 그것도 모자라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는 만용을 보여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망국의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무안공항의 참사가 발생했고, 정치권은 잠시나마 정쟁을 중단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어쩌면 희생자들이 살신성인을 통해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언제까지 정치에 발목을 잡혀 국가와 국민이 이토록 흔들리고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지 않으면 피땀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진정한 민주정치 복원의 길을 생각해 보자.
현시점에서 정치 정상화를 위한 첫 단계는 사법부에 달려 있다. 우선 9명 정원의 헌법재판소를 6인 체제로 만들어 놓고 재판관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 주범이 정치권이다. 사상 유례없는 탄핵소추로 사건은 밀려드는데 헌법재판소법 23조는 심의 기준으로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해야 하고, 결정을 위해서는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6명만 남은 헌재가 사건 심의를 하기 위해 이진숙 방통위원장 측이 청구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제23조 ①항의 의사정족수 기준의 효력을 일시 정지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디.
헌재가 법에 따라 정당하고 공정하게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신속히 국회 몫의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의 탄핵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이 2명을 지명한 것은 탄핵 결정의 공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으니 우선 여야가 각 1명씩이라도 합의해 추천하여 8명 체제로라도 정상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후 남은 1명을 합의 추천하면 추가 임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법부도 이재명 대표의 재판을 절차에 따라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이 나라에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민주적 정치 복원은 국회의 정상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적어도 20대 국회까지 여야는 ‘합의’에 입각해 국회를 운영해 왔다. 21대에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그동안의 합의존중 관행은 깨지고 상임위원장 배분을 비롯해 독단적 국회 운영을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정치 실종으로 이어졌다. 합의 정치는 상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수 의석의 힘만 믿고 그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다수당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합의에 의한 정치는 다수당의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유능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대표에 충성해야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정치구조에서는 어떤 사람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한다. 중앙당 위주의 정치구조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 지역주민들에 봉사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애국·애민 정신이 투철한 양질의 정치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정치인재 양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기득권자라 할 수 있는 상류층에서 아무 조건 없이 정치인재 양성에 필요한 재원을 기부해 정치적 이념과 가치관에 상관없이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익을 위해 활동하는 정치인재를 키워야 한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일본의 마쓰시다 정경숙은 고려해볼 만한 선례가 될 것이다. 2025년 새해 원단,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치인재 양성의 시급함을 호소드린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 행정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