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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새해엔 ‘기분 의존성’에서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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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01 21:39:56 수정 : 2025-01-01 21: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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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행동 지배 땐 기분 따라 선택 좌지우지
기분은 파도 같아 목표 향해 꾸준히 노 저어야

짜릿한 쾌감, 황홀한 느낌, 유쾌한 기분이 찾아왔을 때 우리 내면에서 그런 상태는 얼마나 지속될까? 길어봤자 20분 정도다. 쇼츠 영상을 보다가 순식간에 ‘빵 터져서’ 재미를 느꼈는데, 그 감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20분 안에 비슷한 영상을 또 봐야만 한다. 짜릿함을 온종일 느끼려면 그런 정서를 일으키는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좋은 기분만 좇다 보면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행동은 소홀히 하게 된다.

작년부터 고시 공부를 쭉 해온 청년이 푸념을 토해냈다. 두어 달 후면 시험인데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이 시킨 대로 나를 응원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했더니 잠시 기분이 나아지긴 했는데 이내 다시 가라앉던데요!”라며 불평하듯 말했다.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하려면 반복해서 자신을 다독여줘야 한다. 일이 년 동안 공부만 해왔으니 심신이 지치는 건 당연하다. 그럴수록 책상 앞에 응원 글귀를 써놓고, 마음속으로 따라 읽고,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의 자아상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실행하도록 스스로를 더 자주 추슬러야 한다. 한두 번 그렇게 하고 나면 동기가 계속 끓어오를 거라 착각해선 안 된다.

진료 중에 나는 종종 “산책하고, 틈틈이 운동도 하고, 친구 만나서 밥도 같이 먹어야 치료에 도움이 돼요”라고 조언하는데 그러면 우울증 환자들은 “그럴 마음이 안 생겨요. 기분이 좋아지면 그때 해볼게요”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환자 입장에선 자신의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겠지만 임상적으로 보면 ‘기분 의존성 (mood dependence)’에 젖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고, 기분에 따라 선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일컫는다.

기분 의존성은 오랫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서 흔히 관찰된다. 작은 활동을 실천해가며 기분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동기가 저절로 차오르기를, 우울감이 시나브로 사라지기를 기다리고만 있으면 침울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이 우울해서 공부가 안 된다며 온종일 누워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의욕은 더 떨어지고,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생활리듬을 지키고 스트레칭으로 긴장을 풀어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나는 지금 우울해서 못하는 거예요!”라고 항변했다. 과연 그럴까?

엉뚱하지만 이런 상상을 한 번 해보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이 수험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네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쭉 지켜봐 왔다. 이제부터는 제때 기상하기만 하면 시험에 합격시켜 주신다고 신께서 약속하셨다.” 천사의 약속을 듣고도 우울하다며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다. 간절히 바라던 합격통지서를 받기 위해 몸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우리 인간은 기분과는 독립적으로 ‘지금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떠올리며 비록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분은 파도와 비슷하다. 인간의 힘으로 파도를 멈출 수 없듯, 기분이 저조해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순 없다. 우울증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도 출렁이는 바다를 고요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파도가 치더라도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 저어나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파도가 친다고 출항을 미루다 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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