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700여명 10분 간격 순차적 방문
떡국·귤 등 음식 준비해 약식 추모·헌화
합동분향소 추모 대기줄도 수백m 넘어
전국 분향소 누적 조문객 2만7000여명
참사 희생자 179명 신원 모두 확인돼
유족 확인·검시·시신 인도 등 절차 진행
현장 유족·공무원 등 트라우마 호소도
“사랑하는 ○○야, 미안해!”, “너무너무 사랑해. 꿈에서라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을게.”
제주항공 여객기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 나흘째인 1일 유가족들이 처음 사고현장을 찾아 고인들 넋을 기렸다. 무안공항 활주로 끝단에 형체 없이 기체 꼬리만 남아 있는 이곳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유족협의체와 수습 당국이 새해를 맞아 처음 사고 현장을 공개했다. 당국은 유족 신원 확인을 거쳐 사망자 1명당 유족 4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차량 16대로 유족과 도우미 등 약 700명이 10분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유족들은 당국이 마련한 떡국과 귤 등 간단한 음식을 놓고 20~30분간의 약식 추모식을 가졌다. 헌화하고 술을 올린 뒤 절을 하는 과정에서 창졸간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울분과 비통함을 토해내는 유족이 대부분이었다.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거나 연신 손을 저으며 오열하는 유족들도 많았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반경 250여m 너머까지 들릴 정도였다. 추모를 마친 일부 유가족 중에는 과호흡 등을 호소하거나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울다 쓰러지기도 해 119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사고 현장 멀리서 유족들 오열을 지켜본 한 추모객은 “희망차고 행복해야 할 새해에 참사로 망연자실하는 유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안타깝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새해 첫날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이른 시간부터 해돋이 대신 분향소를 찾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한 추모객은 영정과 위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직 너무 젊은데”라며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공항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분향 대기 줄은 오후 한때 공항 청사 밖 외부 활주로 울타리 인근 외벽까지 600m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합동분향소에는 이날까지 2000여명이 방문했다.
전날부터 이날까지 합동분향소 조문객은 4000여명에 달한다. 무안종합스포츠파크와 전남도청, 광주 5·18 민주광장 및 각 시·군에 설치된 분향소까지 더하면 2만7000여명이 희생자들 넋을 기렸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학동 붕괴 참사 등 사회적참사 유가족이 모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 회원들도 이날 무안공항 합동분향소를 참배했다. 김종기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왜 자꾸 참사가 반복되는지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라며 “우리가 더 노력해야 했는지, 우리가 더 싸웠어야 했는지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활주로 철조망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와 음식, 손편지, 포스트잇 등이 빼곡한, 이른바 ‘추모의 계단’이 들어섰다. 10세·8세 남매를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는 한 시민(39)은 “분향소를 들렀다가 자녀와 비슷한 또래의 희생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아픈 마음에 이곳으로 왔다”며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바나나우유와 삼각김밥을 두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너무 무서웠을 그 시간이 비통하고 미안해요”, “부디 그곳은 마지막인 여행처럼 행복하시길”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사고기 기장의 형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손편지 앞에는 여러 명이 모여 편지를 읽는 모습도 보였다. 편지에는 ‘외로이 사투를 벌였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는 이미 너무나 훌륭했고 충분히 잘했으니 이젠 따뜻한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마웠고 미안하다. 형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참사 희생자 179명의 신원을 모두 확인한 당국은 유족 육안 확인, 검안·검시, 시신 인도 등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모든 시신 인도 절차를 마친 희생자는 20여명이다. 이번 사고의 여파로 유족과 사고 수습에 직접 참여했던 소방 공무원들과 경찰 과학수사대, 현장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신적 충격(트라우마)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유족의 경우 검안·검시 과정에 참여한 이후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