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친자가 아닌 혼외자도 친족특례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을까?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범인도피죄를 정하는 형법 제151조에 따르면 친족이 이 죄를 범했을 땐 처벌하지 않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해 11월28일 범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9년 7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폭력 조직 국제PJ파의 부두목 조규석씨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지난 2019년 5월 50대 사업가를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이후 잠적해 9개월 동안 도피 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지난 2021년 7월 징역 15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A씨는 조씨가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수차례 만나 800만원 상당의 도피자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또 친구와 후배 등에게 부탁해 조씨가 은신할 장소와 차량, 대포폰 등도 제공했다.
문제는 A씨가 조씨의 혼외자라는 사실이었다. 이에 혼외자에게도 형법상 범인도피죄의 친족특례를 적용할 수 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됐다. 형법 151조 1항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같은 조 2항은 친족 또는 동거 가족이 범인도피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친족특례를 뒀다.
1심은 A씨가 법률상 친족에 해당하진 않지만 혼외자의 경우에는 친족특례를 유추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부자관계는 관계 확정을 위해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도 혼인외 출생자와 생부 사이에 자연적 혈연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범인에 대해 도피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는 법률상 친자관계나 자연적 혈연관계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했다.
검찰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했지만, 2심 재판부는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생부인 조씨의 ‘인지’가 없어 A씨를 법률상 그의 친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혼외자를 생부·생모가 자식으로 인정하는 것을 인지라고 부른다. 혼외자가 아버지와 법률상 부자 관계를 인정받으려면 인지라는 형식을 따라야 한다. 어머니도 인지할 수 있지만 모자 관계는 출생 등으로 당연히 발생한다.
대법원은 민법에서 규정하는 친족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형법 151조 2항은 구체적·개별적 관계나 상황을 가리지 않고 ‘친족 또는 동거가족’에 해당하기만 하면 일률적으로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함으로써 그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정했다”며 “유추 적용을 허용할 경우 입법자가 명확하게 설정한 적용 범위가 확장되어 입법자의 의도에 반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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