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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해가 쨍쨍한 날

고개를 숙이고 걷던 이에게

말라 죽은 지렁이를 보여준다

 

해를 피해 가던 순간에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록 눈살은 찌푸렸지만

지렁이의 이로움엔 유감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스스로 눈살을 찌푸린 이유에 대해 생각할지

 

어떤 기쁨은 알 수 없다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유로

 

어떤 슬픔이 꿈틀거리는지

너무 환한 날에 멀어지는지

지난 한 주간 수차례 새해 인사를 주고받았다. 전화로, 메일로 다정이 깃든 덕담을 실어 보내고 실어 왔다. 새해를 맞는다는 건 달력을 넘기는 정도의 예사로운 일에 불과하다 여기는 내게도 해맞이 인사는 조금 특별하다. 특별하게 생각하려 애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하는 관용적인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한 자 한 자 정성을 기울이려 노력한다. 상대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에.

 

방금 한 친구에게 짤막한 기원의 말을 적어 보냈다. 매일이 밝고 따뜻했으면, 충만했으면, 하고. 행여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진심으로’라는 말까지 꾹꾹 눌러 덧붙이면서. 이 진심은 물론 그가 누릴 기쁨이 곁의 여러 슬픔까지 헤아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슬픔을 외면하는 기쁨이 아니라 슬픔까지 보듬는 기쁨이기를. 환한 날들 속에서도 어떤 슬픔이 꿈틀거리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우리이기를.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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