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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우민호 “안중근 거사 장면, 먼저 간 동지들의 시선으로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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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10 20:00:00 수정 : 2025-01-10 18: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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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400만명 돌파를 눈 앞에서 둔 ‘하얼빈’은 다소 평이 갈린다. 감동적이다, 묵직하고 담담하게 독립투사들을 그려 좋았다는 의견 사이에 극적 재미가 적다, 밋밋하다는 감상도 나온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우민호 감독은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신파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며 “담담하지만 힘이 있고 숭고한 느낌으로 풀어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조명하고 한 대상은 ‘동지들’이다. 독립운동 뒤에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 클로즈업을 자제했다. 우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하얼빈’에 대한 주요 궁금증을 중심으로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사진=CJ ENM 제공

-‘하얼빈’을 촬영하게 된 계기라면

 

“한 3년 전 정도 된 것 같다. 우연치 않게 안중근 의사 자서전과 관련 서적을 읽었다. 몰랐던 지점이 꽤 있다. 나이가 30대였다. 너무 젊어서 놀라웠다. 이 분을 영웅으로만 알았는데 패장이었더라. 지탄도 많이 받고. 이 분이 어떻게 그런 거사를 성공할 수 있었을지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이 분이 한 실제 말씀이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의 중간 부분이 실제 안중근 장군이 한 말씀이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이 말씀이 와닿았다. 살다보면 개인적으로 많은 역경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그 말씀이 먼 얘기처럼 들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다가와서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 말씀이 관객에게도 느껴진다면, 안중근의 얘기가 2025년 관객에게 어떤 힘과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나레이션(‘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이 요즘 시국과 맞아떨어진다.

 

“그 나레이션은 안중근 장군께서 하신 말씀을 가운데에 두고 제가 앞뒤를 채워 썼다. 2024년 새해 벽두 1월1일에 갑자기 일어나서 확 영감을 받았다. 10분도 안 걸려 썼다. (그 독백이) 안중근 장군이 하신 말씀과도 비슷하긴 하다. 이 한번의 성공으로 독립은 이뤄지지 않는단 걸 당연히 아셨다. 그렇기에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될 때까지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35년 후에 독립을 이룰 때까지 우리가 싸우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게 우리의 승리다.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사진=CJ ENM 제공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부감(하늘에서 보는 시선)으로 찍었다.

 

“저도 유혹이 있었다. 명배우들 얼굴을 왜 찍고 싶지 않겠나. 그렇지만 좀 다르게 찍고 싶었다. 안중근 장군 저격 장면은 다 그렇잖은가. 얼굴, 얼굴, 탕, 탕. 저격 순간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었다. 또 그 순간을 먼저 간 동지들의 시선으로 찍고 싶었다. 그 일을 하기까지 수많은 동지들이 희생했으니 동지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안중근 장군이 외치는 ‘까레아 우라’가 그들에게 들렸으면.”

 

-안 장군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는데.

 

“안중근도 우리 모습 같았으면 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을 단독으로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룹샷, 다 같이 있는 장면이 많다. 의도했다. 이 영화는 동지들에 대한 작품이기에 누구 하나가 두드러지거나 영웅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이 거사는 다같이 한 거다. 많은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역에서 총을 당길 수 있었음을 보여주려 했다. 허구의 인물을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적으로 만들어야 해서기도 하지만. 몇몇 사람이 거사를 주도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것, 뭔가를 이루는 건 우연히 되는 게 아니란 것, 나도 모르는 일들이 계속 연결돼서 일이 성사됨을 전하려 했다.”

 

사진=CJ ENM 제공

-초반 함흥 신아산 전투가 처절하게 찍혔다.

 

“사실 무술감독이 쾌감이 오는 액션을 짜왔다. 제가 모든 걸 바꿨다. 그렇게 찍으면 안 된다. 이 장면을 광주에서 찍었는데 마침 50년만에 대폭설이 산에 내렸다. 원래 설정에는 눈이 없었다. 눈이 50∼60㎝ 쌓였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이건 어렵지만 찍어야겠다, 하늘이 준 선물인 것 같다’고 했다. 눈이 내리니 자연이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 국토,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에 당시에 유린됐구나. 이런 장면을 통쾌한 액션으로 찍을 수는 없었다. (일제 강점기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땅도 있지 않나. 이 자연이 훼손된 거였다.”

 

-영화가 너무 무겁다는 평이 있다.

 

“숏폼이 인기인 시대에서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이 영화를 클래식하게 찍고 싶었다. 컷도 클로즈업도 많이 없지만 드라마틱하게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해서 신파로 울리면 신파라고 뭐라 하지 않나. 제가 신파를 안 좋아하기도 하고,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신파로 보고 싶진 않았다. 담담하지만 힘이 있고 숭고한 느낌으로 풀어지길 바랐다. 신파가 나쁜 건 아니지만 신파는 쉽게 휘발되는 것 같다. 눌러서 눌러서, 마음이 정말 깊어지면 눈물이 안 나지 않는가. 배우들에게 ‘들리지 않지만 보이는 톤으로 연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CJ ENM 제공

-안중근 역에 배우 현빈이 적합했냐를 두고 많은 감상이 나온다.

 

“우리가 아는 안중근과 좀 다르게 그려보고 싶었다. 패장이 하얼빈까지 가는 여정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고뇌에 차 있었을까, 두려웠을까. 가족은 조국에 남겨지고, 내가 또 실패하면 많은 동지가 죽을 수도 있고. 많은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눈빛이 현빈 배우에게 있었다고 봤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처연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강한 힘이 느껴져서 결기가 있고, 한번 마음 먹으면 절대 굽히지 않는. 이런 걸 현빈 배우의 눈에서 봤다. 현빈 배우가 마지막에 카메라 향해 걸어올 때 그 얼굴이 여운이 깊게 남는다. ‘나 성공했어, 영웅이야’ 이런 얼굴이 아니다. 복잡한 얼굴이다.”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감탄한 지점이 있나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신아산 전투 장면에서 눈밭, 진흙밭에서 뒹굴었다. 진흙과 얼음이 바지를 파고들어서 팬티 안까지 들어왔다. 언제 또 그 장면을 찍을지 알 수 없기에 바로 갈아입을 수가 없다. 그걸 다 버티면서 찍더라. 드론으로 위에서 촬영하면 인물이 작게 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인간의 육체가 초라하게 보이는 순간 정신이 깨어나고, 그러면서 육체를 이겨내는 걸 보여주려 했다. 요만하게 보이니 대역을 써도 된다. 현빈 배우는 절대 그렇게 안 하겠다고 하더라. 뒤통수나 발만 나오는 장면도 자기가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배우의 자세에 매순간 감탄했다.”

 

사진=CJ ENM 제공

-이토 히로부미가 ‘이 나라 백성은 지배층이 해준 것이 없음에도 위기 때마다 일어난다’는 대사를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맥락의 말도 하는데 어떤 의도로 넣었나.

 

“그게 실제 이토의 생각이었다. 우리 왕과 유생을 무시했다. 하나도 겁이 안 난다고 했다. 자기가 초대 총독부 통감으로 갔을 때, 마차를 타고 총독부에 갈 때마다 거리의 민초들이 자기를 보는 눈빛이 너무 서늘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대사를 만들었다. (조선에 돈을 쏟아부어 발전시켰다는 발언 역시) 원래 이토 생각이다. 실제 고민이 많았다고 하더라. 자기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민초는 왜 적개심을 갖는지.”

 

-영화 후반부 모리 중사가 공부인에게 습격당하는데 치명상은 아니었나보다.

 

“그런 악은 계속 나온다는 걸 상징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출몰한다는 것.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런 상징이다. 공부인은 허구의 인물이다. 당시 크게 조명 받지 못한 여성 독립군과 독립투사를 대표한다. 전여빈 배우가 너무나도 강단 있게, 단단하게 그 역을 소화했다. 공부인이 되게 격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실 안중근을 포함해 독립투사들이 격이 있어서 숭고하게 그려지길 바랐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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