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용굴촛대바위, 동해 추암촛대바위와 ‘쌍벽’/절벽따라 잔도처럼 놓인 아찔한 해안산책로 660m 이어져/푸른 바다 기암괴석 어우러지져 절경/환선굴은 우리나라 최대규모 석회암 동굴 /영화 ‘메트릭스’ 지하도시 시온에 온듯 거대한 크기 압도
발아래로 밀려들어 와 집어삼킬 듯 바위섬을 사정없이 때리는 짙푸른 파도. 절벽에 아찔하게 매달린 잔도. 그 위에 서자 몸을 날려 버릴 듯,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까지. 1분만 걸어도 정신이 번쩍 든다. 올해는 더 명료한 사고를 잃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인가. 푸른 뱀의 해,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한 전설이 흐르는 삼척 초곡용굴촛대바위길 걸으며 한 해를 살아갈 건강한 기운을 가슴에 잔뜩 품는다.
◆용굴 설화 깃든 바닷길 걸어볼까
강원 동해시에 추암촛대바위가 있다면 이웃한 삼척시에는 초곡용굴촛대바위가 있다. 생김새와 크기가 거의 비슷해 쌍벽을 이루는데 삼척 촛대바위는 좀 더 아찔하게 즐길 수 있다. 절벽에 선반처럼 매단 잔도가 입구에서 촛대바위를 지나 용굴까지 660m가량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통과하자 용굴설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과 시원하게 펼쳐진 초곡바다를 함께 담을 수 있는 멋진 포토존이 여행자를 반긴다. 날카로운 앞발을 들어 올린 용의 형상이 금세 바다 위로 날아오를 듯하다. 바로 옆 1전망대의 풍광도 장관이다. 바다로 튀어나가 날카롭게 솟아오른 절벽의 형상이 마치 용의 머리 같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인데도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인 데다 용굴설화가 깃든 곳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인다. 설화가 아주 재미있다. 먼 옛날 바닷가 마을에 살던 가난한 어부가 꿈을 꿨다. 죽은 구렁이가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데 갑자기 백발노인이 나타나 “저 죽어 있는 구렁이를 데리고 가 근덕면 초곡리에서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어부는 꿈이 하도 기이해 이튿날 아침 배를 타고 나가 보니 정말 죽은 구렁이가 바다에 떠 있었다. 어부는 당황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구렁이를 초곡 용굴로 옮긴 뒤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죽었던 구렁이가 다시 살아나 굴속으로 들어가더니 용이 돼 하늘로 승천했다. 이후 어부는 바다에 나갈 때마다 고기를 많이 잡았고 부자가 돼 행복하게 살았단다. 얘기만 들어도 뭔가 좋은 기운을 얻을 것 같다.
잔도를 따라 걷는다. 신이 파란 잉크를 바다에 풀어 놓았나. 난간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는 겨울이라 더 한없이 맑고 투명한 푸른색이다. 마침 날이 좋아 푸른 하늘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니 그대로 떼어내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매일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 같다.
10여분 걸으면 10m 높이의 출렁다리가 등장한다. 진짜 출렁거린다. 일부 구간은 아래가 훤히 보이는 강화유리로 만들어 건장한 사내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이곳 풍경이 절경이다. 밀려드는 파도가 출렁다리를 지나 절벽과 부딪치며 돌아 나오는 풍경은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여서 감탄만 쏟아진다.
절경을 즐기며 20분 정도 걸으면 하늘로 솟아오른 초곡용굴촛대바위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촛대바위는 주변의 기암괴석들과 신비롭게 어울려 ‘해금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촛대바위 오른쪽 피라미드 바위를 자세히 보면 왼쪽 꼭대기에 거북바위가 보인다. 바위를 오르는 것 같은 모습이 영락없는 거북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는 예전부터 잡귀를 쫓거나 마을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빌 때 자주 등장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라 여행자들은 이곳에 서서 소원 하나씩 빌고 간다. 조금만 안으로 더 걸어가 각도가 살짝 바뀌면 진짜 피라미드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삼각형 모양으로 보인다. 마지막 3전망대에 닿으면 하늘을 노려보는 듯한 사자바위와 용굴이 등장한다. 작은 고깃배가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이고 천장이 뚫려 있어 빛이 들어오면 바다 밑으로 아름다운 수초와 그 사이를 오가는 예쁜 물고기를 만난다.
◆거대한 지하도시 환선굴 가보니
촛대바위는 시스택(Sea stacks)의 일종이다.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바위로 이루진 육지의 양쪽을 오랜 세월 거친 파도가 깎고, 튀어나온 안쪽의 약한 부분이 무너지면서 독특한 기암괴석이 만들어졌다. 삼척에는 이런 곳이 즐비해 ‘삼척지질공원’으로 불린다. 약 20억년 전의 선캄브리아시대 변성암, 2억~5억년 전의 고생대 퇴적암, 1억년 전의 중생대 화성암과 퇴적암, 1500만년 전의 신생대 퇴적암이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해 다양한 지질학적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동해안을 따라 해안침식, 퇴적지형은 물론 다양한 석회동굴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동굴이 바로 국내 최고의 가치를 지닌 대이리 동굴지대의 대금굴과 환선굴이다.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산속에 있는 대금굴과 환선굴은 가까워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환선굴은 덕항산 남면 중턱 해발고도 500m에 있어서 접근이 쉽지 않았는데 2010년 4월부터 모노레일이 운행돼 노약자도 가볍게 동굴을 둘러볼 수 있다. 덜컹거리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 모노레일은 산 정상의 웅장하고 멋진 암벽들을 코앞에 펼쳐내며 10분 만에 동굴 입구에 여행자를 쏟아낸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동굴의 크기에 동공이 무한대로 확장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지하 세계 ‘시온’을 보는 듯하다. 보통 동굴은 머리를 부딪힐까 봐 안전모를 쓰는데 이곳은 동굴입구 폭이 16m, 높이는 무려 12m인 거대한 반원형 모양이라 안전모가 필요 없다.
어디선가 “콸콸콸” 물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보니 지하수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저수지를 이루는 풍경이 장관이다. 마치 지상의 계곡을 통째로 지하로 옮겨다 놓은 듯한 환선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회암 동굴로 1662년 허목 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 기록이 등장한다. 내부 80m 지점에서 4갈래로 갈라지며 주굴 길이는 약 3.2㎞, 총연장 길이는 6.5㎞ 정도로 파악됐는데 실제는 훨씬 더 긴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1.5㎞ 정도만 개방돼 있으며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약 5억3000만년에 생성된 동굴은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진주, 동굴산호가 꾸미는 신비로운 세상을 끝도 없이 펼쳐낸다. 도깨비방망이, 악마의 발톱, 하트 모양 사랑의 맹세, 마리아상 등이 등장해 지루할 틈이 없다. 환선굴에는 동물 47종이 서식하며 이 중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이 환선굴에서만 발견된다.
이처럼 신비한 곳이니 당연히 설화가 전해진다. 먼 옛날 대이리 마을 촛대바위 근처에 폭포와 소가 있었는데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나 멱을 감곤 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쫓아가자 지금의 환선굴 부근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커다란 바위 더미들이 쏟아져 나오고 여인은 자취를 감췄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을 선녀가 환생한 것이라 여겨, 바위가 쏟아져 나온 곳을 환선굴이라 이름 짓고 제를 올렸다. 환선굴에서 나온 물은 아래쪽의 선녀폭포를 만들었단다.
◆지친 몸과 마음 달래는 치유의 숲
미로면 삼척활기 치유의 숲은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 피톤치드 가득한 숲을 거닐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1000그루가 넘는 국내 최고의 금강송 군락이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오솔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20여분 타박타박 걸어 숲 속 깊숙하게 들어서면 치유센터 건물이 보인다. 이곳에서 족욕과 온열세러피로 지친 몸을 풀고 다도를 체험할 수 있다. 온열세러피가 인기다. 나무통 속에 들어가 누우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깊은 잠에 빠진다. 명상, 일광욕, 산림욕 등을 즐기는 다양한 치유프로그램이 마련돼 면역력을 높이고 마음과 몸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치유의 숲길은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시간이 걸리는 15개 코스로 조성돼 머리를 식히며 걷기 좋다.
지난해 7월 새천년로에 문을 연 이사부독도기념관은 겨울방학에 아이들이 체험학습하기 좋은 공간이다. 이사부관으로 들어서면 360도 대형 스크린에서 1500여년 전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국토로 만든 이사부 장군의 활약이 실감 나는 영상으로 펼쳐진다. 독도체험관에서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동해생물과 교감하는 인터렉티브 체험을 즐길 수 있고 미디어 스케치북으로 나만의 예쁜 해양생물 작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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