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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도 큰소리라니…

지난해 11월29일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정부 예비비를 반으로 싹둑 자르고, 대통령실·감사원·검찰 등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내용이었다.

예산안 법정 심사기한 도래를 고리로 정부·여당을 벼랑 끝으로 내몬 셈이었다. 여당 말마따나 “재난재해 대비, 민생·치안 예산 삭감으로 국민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터. 책임 있는 집권세력이라면 야당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서 살려낼 것이라고 여겼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순진한 착각이었다. 여권은 “감액안 철회 없이는 증액 협상도 없다”, “정부·여당이 무릎을 꿇을 것이란 망상은 버리라”며 강경 일변도였다.

성경 속 솔로몬의 판결이 떠올랐다.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그때 친모는 어떻게 말했던가. 정부·여당이 나라와 민생을 친자식처럼 여겨도 저렇게 나올 수 있는 건가.

얼마 안 가 윤석열 대통령이 기어이 아이 몸에 칼을 댔다. 민주주의 역사의 발전과 함께 국민 뇌리에서 사라졌던 비상계엄이 44년 만에 소환됐다. 국민이 선출한 의회 활동을 금하고, 언론을 계엄군 통제하에 두며, 미복귀 의료진은 처단한다는 내용의 포고령이 발표됐다. 국회 출입은 경찰력으로 차단됐고 계엄군이 본청까지 들이닥쳤다. 대통령은 직접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 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야당의 줄탄핵과 예산 폭거로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며 계엄 필요성을 강변했다. 자신을 뽑아준 것도 여소야대 국회를 만든 것도 국민인데, 임기 2년 반이 지나도록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을 못 익힌 듯해 눈앞이 아득해졌다. 계엄은 총칼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을 지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런 걸 우리는 ‘친위 쿠데타’라고 부른다.

우방국이 당혹해하고 환율이 급등했다. 국무위원 중에서 계엄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이 경제부총리와 외교부 장관이었던 까닭이 거기 있었을 것이다. 나라는 여전히 북한 위협을 등에 지고 있는데, 국방과 치안을 관장하는 장관이 계엄에 연루돼 물러났다. 별과 무궁화도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대한민국이 ‘대행’민국으로 변해가는 혼란 속에서도 ‘계엄 선포권’과 ‘군 통수권’, ‘외국에 나라를 대표하는 권한’은 여전히 윤 대통령에게 있었다. 스스로 물러나기를 거부하니 탄핵소추로 직무를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후에도 수사를 거부했고 헌법상 영장주의도 무시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그를 위해 지지자와 여당 의원이 둘러친 ‘인의 장막’과 경호원들을 무기로 열흘 넘게 공성전을 벌였다. 여당과 법 기술자들은 대행의 권한 범위, 수사권, 영장 발부의 적절성에 이런저런 훈계를 놓으며 시간 끌기를 도왔다. 혼란과 불확실성의 원인 제공자를 향한 진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 유력 언론들은 다시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소식을 타전하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해 대는 결정적 순간에 한국이 리더십 위기로 마비됐다”고 했다.

이쯤 돼서 다시 묻게 된다. “청컨대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소서.” 당신은 대체 어느 쪽이냐고.


유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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