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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에 알려진 영화 ‘페일 블루 아이(Pale Blue Eye)’의 배경은 1830년대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다. 이 영화는 웨스트포인트 퇴학생이었던 시인 에드거 앨런 포를 등장시켜 한 생도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포가 가입한 ‘데비 크로스’는 웨스트포인트의 비밀 클럽으로 살인 사건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데비 크로스는 영화 속 창작물이지만 현재 웨스트포인트에는 100개가 넘는 생도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미국 프로 풋볼 리그(NFL) 경기나 독립기념일에 고공 강하 시범을 펼치는 ‘패러슈트 팀’이 가장 친숙하다. 전국 토론 대회에서 하버드나 예일 같은 명문대팀과 맞짱을 뜨는 ‘디베이트 팀’도 인지도가 높다. 클럽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전통과 의식으로 결속력을 다진다. 꼴찌 졸업생끼리 뭉친 ‘고트(Goat) 클럽’도 있다. 전통적으로 꼴찌 생도는 행사장에서 맨 마지막으로 졸업장을 받는다. 군 경력은 성적순이 아니어서 장군까지 올라간 꼴찌들도 있다. 패러슈트 팀의 경우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첫 강하에 성공하면 정식 회원이 된다. 학보를 만드는 ‘웨스트포인터’ 클럽에서는 첫 기사를 쓴 신입 회원이 손에 잉크를 묻혀 신문사 벽에 손자국을 남긴다.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의 영향으로 소수 인종 출신과 여성 생도가 늘면서 클럽도 더 다양해졌다. 한인계 생도들이 주축인 ‘한·미 관계 세미나’를 비롯해 ‘일본 포럼 클럽’, ‘아시아태평양 포럼 클럽’, ‘베트남계 미국인 생도 협회’, ‘라틴 문화 클럽’, ‘미국 원주민 유산 포럼’, ‘전국 흑인 엔지니어 협회’, ‘여성 엔지니어 협회’ 등이 속속 생겨났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역풍이 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웨스트포인트의 채드 포스터 부교장은 4일 대통령 행정명령과 국방부 및 육군 지침에 따라 이들 소수자 클럽 12개를 대상으로 해산 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DEI는 백인과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지자들의 요청을 수용한 결과다. 동맹도 봐주지 않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국내에서는 ‘백인·남성 우월주의’로 발현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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