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최대의 섬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로마에서 탄 기차 배에 실어 바다 건너 시칠리아로/케이블카 타고 해발고도 2500m 올라 트레킹/나무 한그루 없는 에트나 온통 하얀눈으로 덮인 풍경 장관/타오르미나 고대 극장에선 시간여행/객석 앉으면 이오니아해·눈덮인 에트나 파노라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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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을 오른다. 헉헉. 가쁜 숨 내쉬며. 과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까. 걱정 반, 의심 반 잔뜩 품은 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 헤치며 걷고 또 걸어 에트나 화산 분화구 아래 섰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척박한 산. 그 위를 온통 뒤덮은 하얀 눈.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새파란 하늘까지. 보고도 믿기지 않는 대자연의 서사시에 그만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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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로 바다를 건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들어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로마 공항 등에서 시칠리아 서쪽 팔레르모 공항 또는 동쪽 카타니아 공항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 나폴리에서 출발하는 페리도 있다. 또 하나가 기차다. 거짓말 같지만 진짜 기차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나폴리를 거쳐 레조디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면 열차 객실을 분리한 뒤 바닥에 레일이 깔린 초대형 선박에 차곡차곡 싣는다. 배가 30분가량 바다를 건너 메시나 항구에 도착하면 기차는 원래대로 조립돼 다시 철길을 달린다. 직통 열차 기준 로마~카타니아는 약 9시간50분, 로마~팔레르모는 약 11시간30분 걸린다.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다. 2등석 기준 카타니아는 편도 성인 1인 69.5유로(약 10만원), 팔레르모는 80.5유로(약 12만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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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로마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1인 20만원 안팎이다. 침대칸이 설치된 야간열차를 이용하면 하루 숙박비를 아낄 수 있지만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아름다운 풍광도 볼 수 없으니 주간 열차를 추천한다. 기차를 실은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행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갑판 위로 나선다. 마침 날도 화창하다. 푸른 하늘과 바다 너머로 메시나 항구의 상징인 높이 60m 성모 마리아 조각상 마돈나 델라 레테라가 보이기 시작하자 벌써 가슴이 설렌다. 처음 만나는 시칠리아는 어떤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펼쳐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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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에트나의 장엄한 대서사시
시칠리아 여행은 렌터카가 정답이다. 제주도 면적의 14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데다 대부분 산악 지형이라 도시를 연결하는 기차,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이 발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첫 여행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발고도 3329m 에트나 화산. 지난해 7월에도 용암이 분출됐을 만큼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에트나 화산은 특히 겨울철에 장관이다. 화산재 대신 정상까지 온통 눈으로 덮인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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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니아에서 출발해 곡예를 하듯,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1시간 달리면 에트나 화산 케이블카 정류장인 해발고도 1923m 푸니비아 델 에트나에 도착한다. 에트나 화산 트레킹 프로그램은 두 종류다. 2500m 투어는 케이블카로 2500m까지 올라 자유 트레킹을 한다. 3000m 투어는 2500m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사륜구동 소형버스로 갈아타고 2900m까지 오른 뒤 가이드와 함께 허용된 최대 고도 3000m까지 접근할 수 있다. 목표는 3000m 투어였지만 기상 때문에 2500m만 운행한단다. 어쩔 수 없다. 3000m까지 그냥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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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덜컹거린 케이블카가 빠른 속도로 고도를 높이자 분화구가 또렷한 실베스트리, 칼카라치 등이 발아래 놓여 있다. 분화구 너머로 보이는 카타니아만의 해안선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20분 만에 2500m까지 올라 정류장 밖으로 나서자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에 몸이 휘청거린다. 상의 패딩과 바지를 두 개씩 껴입기 잘했다. 하지만 걷기가 쉽지 않다. 경사가 생각보다 가파르고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눈 속에 푹푹 빠진다. 점점 무거워지고 느려지는 발걸음. 하지만 가슴은 에트나를 오를수록 가벼워진다. 태어나 처음 보는 장엄한 풍경이 끊임없이 다가오는 덕분이다. 나무 하나 없어 윤곽을 그대로 드러낸 에트나가 온통 눈으로 덮인 풍경이라니. 벅차오르는 감동을 애써 누르며 버킷리스트의 한 줄을 완성한다. 2001년 용암이 분출한 에스크리바 둔덕에선 스키어들이 신나게 활강한다. 무거운 스키와 부츠를 짊어지고 이곳까지 오르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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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을 걸어 2600m쯤 올랐을까. 2002년과 2003년 분출한 누오비 코니로 오르는 길목에 접어들었다. 그 뒤로 목표지점인 2920m 토레 델 필로소포가 어렴풋이 보인다. 두 시간 정도 더 걸으면 닿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을 사정없이 따갑게 때리는 눈보라가 몰아친다. 맑던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10여분을 서 있어도 그대로다. 어쩔 수 없지. 에트나의 허락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진한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리는데 겁이 덜컥 난다. 길이 안 보인다. 가까스로 눈길을 오가는 스노캣츠의 바퀴 자국을 찾아내 더듬더듬 산을 내려간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겨우 도착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한마디, “살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조난당한 이들이 있는지, 구조요원들이 수색견을 앞세워 출동하느라 분주하다. 서둘러 하산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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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 고대 극장에서 시간여행
에트나 화산 트레킹은 카타니아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지만 숙소는 볼거리가 훨씬 많은 북쪽의 타오르미나를 추천한다. 바닷가 절벽 위에 조성된 작은 마을 타오르미나는 영화 ‘그랑블루’의 촬영지. 포르타 카타니아에서 포르타 메시나까지 1km가량 이어지는 움베르토 거리를 따라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가 즐비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오르미나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면 1635년에 만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분수가 여행자를 반긴다.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가 왕관을 쓴 꼭대기 조각상이 독특하다. 움베르토에서 가장 있기 있는 곳은 ‘4월9일 광장’. 체스판 같은 블록으로 꾸민 광장 바닥과 시계탑, 산 주세페 교회가 고풍스러운 풍경을 선사한다. 고개를 바다로 돌리면 낙소스만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에트나 화산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풍경에 탄성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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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 머리 모양 화분이 곳곳에 놓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싹한 얘기가 전해진다. 시칠리아가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시절, 한 시칠리아 여인은 무어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무어인이 고향에 처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인은 깊은 배신감에 무어인의 머리를 잘라 바질을 심었는데 무럭무럭 자랐다. 이를 본 이웃들이 무어인 머리 모양 화분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기념품이 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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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카테리나 광장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타오르미나 고대 극장으로 이어진다. 관람석이 직경 109m로, 타오르미나 남쪽 시라쿠사 고대 그리스 극장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이다. 기원전 3세기 시칠리아를 식민지로 삼은 고대 그리스인이 최초 건축했고 2세기 로마인이 재건축하면서 두 양식이 섞여 있다. 전망 좋은 맨 꼭대기 객석에 앉는다. 부서지고 허물어졌지만 고대인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은 무대 뒤 벽체와 기둥은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극장 너머로 펼쳐지는 쪽빛 이오니아해와 더 높은 절벽 위 마을 카스텔몰라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덤이다. 여유가 된다면 카스텔몰라에도 올라보길. 방금 지나온 고대 극장, 타오르미나성,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이솔라벨라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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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미나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빼놓으면 후회할 여행지가 있다. 바로 영화 ‘대부1’의 촬영지 사보카 마을이다. 이곳에 영화 속 주인공 마이클(알 파치노)이 아폴로니아(시모네타 스테파넬리)와 결혼식을 올린 산타 니콜로(산타 루치아) 교회와 아폴로니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로 나왔던 바 비텔리가 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살인자가 된 마이클이 조직 간 혈투가 벌어지는 살벌한 뉴욕을 떠나 아버지 비토 코를레오네(말런 브랜도)의 목가적인 고향마을 코를레오네로 잠시 피신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마을이 실제는 사보카다. 패밀리 이름이기도 한 코를레오네는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 남쪽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시칠리아 마피아의 본거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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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카에 도착하자 깊은 산속마을이라 오후 4시반인데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운 좋게 알 파치노가 앉았던 야외 테이블을 차지했다. 따뜻한 초콜레타 한잔 입술에 적시며 카페를 둘러보니 알 파치노가 금세 어디선가 걸어 나올 것 같다. 바 내부 벽은 영화의 주요 장면들로 빼곡하다. 바 비텔리 앞에는 촬영 장비를 들여다보는 모습의 대부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동상이 서 있다. 그 너머 절벽 위 건물이 산타 루치아 교회. 시간이 멈춘 오르막 길 타박타박 걸어 교회 앞에 섰다. 지나온 길 따라 따뜻한 가로등 하나둘 켜지니 잘 늙은 산속 작은 마을 풍경이 가슴속에 아련한 낭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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