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 준 책상엔 서랍이 달려 있어요
부드럽게 열렸다 느리게 닫히는군요
내부는 눈부신 빛깔의 자작나무예요
당신의 선택이 옳아요 사실은
슬며시 비난했던 그 스피커도 아주 탁월했어요
(중략)
거대한 수거함 내부 같은 밤
누군가 남기고 간 짐들이 빈 거리에 기어 나오는 밤
고급 레일을 사용한 덕분이겠죠
눈은 멈추지 않고 오래 내립니다
오늘 저녁엔
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드럽게 열렸다 느리게 닫히는 것이
있어서 좋군요
![](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2/10/20250210517002.jpg)
오래된 서랍장 앞으로 다가가 서랍 하나를 열어본다. 그리고 닫아본다. 얼마나 부드럽게 열렸다 느리게 닫히는지,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을 가만히 음미해 본다. 평소 서랍 속에 든 것을 꺼내느라 무심코 열고 닫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 어떤 사물에는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이 묻어 있음을 문득 알아차린다. 꼭 “고급 레일을 사용한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그 흔적이 이토록 긴 시간 지속되는 이유. “부드럽게 느리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여기는 정말이지 “거대한 수거함 내부” 같기도 하다. 한 시기를 지나 남겨진 짐들로 가득한 곳. 그런 짐들에 둘러싸인 채 살고 있는 것일까. 소용을 다한 것처럼, 우리 또한 남겨져 있는 것일까.
“부드럽게 열렸다 느리게 닫히는 것.” 이런 것은 아무래도 쉽게 내버릴 수가 없겠다. 흔적을 더듬거리듯 지금껏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열고 또 닫았기 때문.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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