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추정의 원칙 있어"…'억울한 피해자' 부작용 우려도
경찰이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김하늘 양(8)을 살해한 40대 교사 A 씨(48)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검토하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선 이미 신상 털이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극적인 신상 공개와 사법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한 시민들의 사적 제재가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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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교대 95학번 졸업생, 수능 치른 아들 있다"…분노하는 사람들
16일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A 씨가 한 교대의 95학번 졸업생이고, 이혼한 남편과 지난해 수능을 치른 아들이 있단 주장이 담긴 글이 게재되고 있다. 게시물엔 A 씨라고 지목된 이름도 거론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초등학교의 교사 명단과 교무실 전화번호를 공유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이 추정하는 신상 정보는 김 양의 아버지가 언급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양 아버지는 지난 10일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취재진과 만나 "해당 교사는 48세 여성이고 아들이 이번에 수능을 봤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적 공분을 사는 범죄의 경우 네티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해자의 신상을 추정·유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학교가 사회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만큼, 학교 관련 사건들은 교사든 학부모든 가해자의 신상이 빨리 확산하는 편이다.
지난 2023년 서울 서이초에서 20대 교사 B 씨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복수의 커뮤니티에선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갑질 학부모의 가족으로 지목됐다. 같은 해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악성 민원을 넣은 학부모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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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체계 불신·소극적 신상공개에 불만…"피의자 구속도 안 돼"
가해자의 신상을 추측하고 유포하는 행위의 배경엔 사법 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깔려 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자들이 형법이 아닌 소년법을 적용해 제대로 된 형사 처벌을 받지 못했단 점이 지난해 사적 제재의 주 근거로 사용됐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적 제재가 제대로 됐으면 사적 제재가 있을 리가 없다"며 "(대전 초등생 살인사건에선) 피해자가 8살 여자아이인데, 교사 A 씨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단 이유로 구속도 되지 않고 있으니 그런 불신의 감정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찰 및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런 소극적인 신상 공개가 국민들의 법 감정과 괴리돼 있단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엔 범죄 피의자 이름을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적 린치는 절대 가해선 안 되지만, 가해자의 안면이나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를 사적 제재라고 봐야 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미국에선 명백한 범죄인 경우 다 공개를 해버린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이 지나치게 과도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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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털이·억울한 피해자 양산·연좌제 '부작용'…명예훼손 처벌받을 수 있어
문제는 네티즌의 신상 유포 등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부작용도 크단 것이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자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연좌제식의 비난이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서 가해자 가족이란 루머에 휩싸인 한 의원은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손자·손녀가 없었고, 서 의원의 자녀는 미혼이었다. 한 의원과 서 의원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관련자들을 고소했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울분을 표현하고 제재를 가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다"며 "온라인 상으로 신상이 급속하게 퍼지기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들까지 사회 생활을 못할 정도의 피해를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가해자는 법적인 처벌을 당연히 받는 거고, 사적 제재는 여러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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