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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이시바의 ‘아부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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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6 23:39:31 수정 : 2025-02-16 23: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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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만나 극진한 립서비스
기분 맞춰주며 자국 이익 도모
세계 질서 불확실성 가속 상황
리더십 부재 韓 위기 더 부각돼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진원은 미국 백악관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익 관철을 위해서라면 기존 약속, 질서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스타일이 불안하고 불만스럽지만 최강자의 방식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각국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최근 일본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 간 미·일정상회담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아부’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이시바 총리의 극진한 립서비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이라이트는 ‘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유세 도중 총격으로 귀를 다쳤을 때 찍힌 사진을 언급하면서 “역사에 남을 한 장. (트럼프) 대통령은 그때 ‘내가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고 확신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개신교 신자인 이시바 총리가 했던 최대급 립서비스”라고 평가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시바 총리는 최선을 다해 트럼프 대통령을 칭찬하고 아부를 통해 웃음을 유발했다”고 보도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이시바 총리가 대등한 미·일 관계 수립을 지론으로 가진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미·일 지위협정 개정 등을 언급하며 비대칭적 양국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지난해 12월 요미우리와 인터뷰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미 외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의 ‘아부 외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트럼프 정부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던 방식과 꼭 닮았다.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추켜세워 기분을 맞추며 개인적 친밀감을 높인 뒤 일본의 이익을 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을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시바 총리와의 만남에서 여러 차례 아베 전 총리를 ‘신조’라고 부르며 언급했고,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에는 아베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 여사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만나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아키에 여사는 미·일 관계를 잇는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아베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아부만 해서 한심하다고 많이 비판받았지만, 칭찬해서 (양국 관계가) 잘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시바 총리도 “추어올리고 추어올려서 (트럼프 대통령) 기분을 좋게 한다. 나답지 않을지 모르지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외국 지도자들이 트럼프에 구애하기 위해 ‘아부의 예술’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위대한 친구”라고 부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미국인 범죄자를 자국에서 수감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내놓은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고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한 최고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아부’라고 불릴 만한 태도를 보이는 건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냉정한 현실 때문이다. 그것을 각국 국민들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일정상회담 직후 이시바 내각 지지율 상승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NHK방송이 지난 7∼9일 실시한 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전달 대비 5%포인트 오른 44%로 집계됐다. 3개월 만의 40%대 진입이었다. 일본 언론의 평가도 “대체로 선방했다”는 게 주류다.

트럼프 정부에 대응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이 절박하지만 지난해 말 계엄령 선포 후 최고 리더십의 부재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수준의 원론적 다짐이나 반복하고 있다. 당당하게 대응하고 실익을 챙겨야 한다는 주문 혹은 바람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고 누군가 나서 아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지는 지경이다. ‘트럼프발’ 세계 질서의 불확실성에 한국의 위태로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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