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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 직격탄… 지역 의료도 뒷전 밀려 [심층기획-의·정갈등 1년…위기의 의료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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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8 06:00:00 수정 : 2025-02-18 0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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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전공의가 떠난 자리

의사 인력구조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해
사직 전공의 몰리자 일반의 70%나 폭증
대형병원 인력난 국민 건강 위협 부메랑
상급종합병원 암수술 17%까지 줄기도

지방 의료 인력들 서울·수도권으로 편중
2024년 4분기 기준 충남 50%·전남 11% 감소
고질병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더욱 가속
2025년 전문의 합격자 2024년 대비 18% 그쳐
“수술하는 교수들이 많이 나가 병원 수술 역량이 크게 줄었다. 우리 병원은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수술은 아예 못하는 처지라고 해도 과한 게 아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A교수는 최근 병원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마취과 의사도 모자라기 때문에 생명 유지와 관련된 수술 일정을 우선 잡고 있고,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 이런 수술은 아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수술이 안 잡히니깐 젊은 교수들은 다 나갔다”며 “전체 교수 인원이 줄지 않도록 계속 보충하는데, 뽑히는 대로 얼마 안 가 나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제는 아예 대학병원 교수 자리에 지원하는 인원도 줄어든 형편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집단으로 수련병원을 떠난 게 20일로 1년이 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17일 국회에서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박단 대한전공의협회의(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대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표하는 데 그쳤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사이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쉽사리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는 게 의료계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수술이 크게 줄고, 번아웃(극단적)을 호소하는 교수 등 전문의들은 병원을 떠나고 있다. 원래부터 ‘약한 고리’였던 지방 병원의 인력 이탈은 더욱 심각해졌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강행한 의대 증원이 전공의 집단 사직이란 ‘쓰나미’를 불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형국이다.

 

◆의원급으로 빠져나간 사직 전공의

 

의·정 갈등 전후로 의사 인력 구조는 말 그대로 ‘천지개벽’ 수준으로 변했다. 전공의는 70% 가까이 줄었고 대신 일반의가 70% 넘게 늘어났다. 일반의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뒤 수련을 받지 않은 경우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대학병원 등에서 수련을 받던 전공의들이 정부의 증원에 반발하며 사직하면서 자연스레 일반의가 폭증한 것이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허용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 중 인턴은 의·정 갈등 이전인 2023년 4분기만 해도 960명이었는데 의·정 갈등 이후인 2024년 4분기에는 113명으로 88.5%(847명) 줄었다. 레지던트는 같은 기간 3120명에서 1112명으로 64.4%(2008명) 감소했다. 반면 일반의는 같은 기간 6041명에서 1만684명으로 76.9%(4643명)나 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이렇게 폭증한 일반의가 일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으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의원급으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당장 수도권만 해도 의원 소속 일반의가 2023년 4분기 기준 2293명에서 지난해 4분기 4320명으로 88.4%(2027명) 증가했다. 결국 의원급에 몰린 만큼 대형병원의 ‘의료 공백’으로 남게 됐다.

 

서울의 주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전문의가 되기 위해 고강도 수련을 기꺼이 받던 전공의들이 사직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굳이 전문의가 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세상’을 봤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런 의료 여건의 변화는 안타깝게도 국민을 향하는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11월 상급종합병원 47곳이 건보 청구한 6대 암(위암·간암·폐암·대장암·유방암·자궁경부암) 수술 건수는 총 4만847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5만8248건) 대비 16.8% 줄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덮친 ‘전문의 구인난’

 

더 큰 문제는 의·정 갈등의 후과가 지방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 간 의료 불균형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사실상 서울·수도권이 급속도로 지방 전문의를 빨아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당직 인력이 부족해 지방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의료진을 채용했다. 이후 학회를 갔더니 그 병원 교수가 거세게 항의했다”며 “한 명이 빠지면 야간 당직 횟수가 늘어나고, 결국 추가 인력 이탈로 이어지는 만큼 지방 대형병원은 극히 예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의·정 갈등 전후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전문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지역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전문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충남으로, 2023년 4분기 432명에서 지난해 4분기 218명으로 49.5%(214명) 감소했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과 인천은 각각 0.1%(6623명→6616명), 1.0%(815명→807명) 정도 줄었고, 경기의 경우 14.2%(1689명→1928명)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보다 사정이 낫긴 하지만 서울과 인천의 경우에서 보듯 수도권 내에서도 ‘전문의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아래인 2차 병원에선 전문의 채용에 병원의 ‘생존’이 달린 상황이란 말도 나온다. 한 지방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전문의가 새로 배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사가 모자란 2차 병원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전문의를 뽑고 있다”며 “수도권 안에서도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데리고 가니 지방에선 의사가 모자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15일 치러진 제68회 전문의 1차 자격시험에서 합격한 인원은 500명으로 전년(5718명) 대비 18%에 그쳤다.


김승환·이지민·정진수 기자, 대구·전북=김덕용·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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