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는 작품마다 열성적 팬을 만들어내고 있는 국립창극단이 신작 ‘보허자(步虛子)’를 선보인다.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그의 권력욕에 희생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소재로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허공을 걷는 사람’을 뜻하는 ‘보허자’는 원래 무병장수와 태평시대를 기원하는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들어온 악곡. 그러나 이 작품에선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동경하나 그와 다르게 현실에 얽매여 발 디딜 곳 없이 허공을 거니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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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본을 맡은 작가 배삼식은 세조(수양대군)로부터 실권을 박탈당한 안평대군이 강화도와 교동도로 유배된 지 8일 만에 사사되었으나, 그의 무덤이나 태실, 비문 등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 중 안평은 나그네로, 수양은 죽은 뒤 안평 눈에만 보이는 혼령이 되어 등장한다. 자신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무참하게 꺾인 인물들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과 현실이 대조된다. 연출은 제54회 동아연극상과 제9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정이 맡았다. 작창과 작곡, 음악감독으로는 국립창극단 인기작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 참여했던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 한승석이 참여한다.
창극단 간판 스타인 김준수가 나그네(안평) 역으로 나와 낙원을 꿈꾸었으나 삶의 공허함만이 남은 삶의 회한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몽유도원도로 안평의 꿈을 그려낸 안견 역은 유태평양이 맡아 깊은 한(恨)의 정서를 무게감 있게 풀어낸다. 대자암의 비구니 본공과 도창 역은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정평 난 김금미가 분하고, 안평 곁에 넋으로 맴도는 수양 역은 이광복이 맡았다.
배삼식 작가는 “극 중 인물이 꿈꾸는 삶의 가벼움과 현실의 무게가 극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순수하고 본질적인 삶에 대한 열망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극작 의도를 소개했다. 서울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3월 13일부터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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