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 폐지되면 韓 기업 피해
에너지·조선 분야부터 ‘윈윈’ 하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아주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미 동맹이 미국에 손해가 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의 관세 부과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카드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에 맞서 우리 국익을 지켜낼 정교한 전략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한·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대부분의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대미(對美) 수입품 관세는 0.79% 수준으로 매우 낮다”고 밝혔다. 따라서 트럼프의 주장은 근거가 없거나 희박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트럼프에게 정확한 수치 같은 ‘팩트’(사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1기 집권기에도 ‘미국이 한국을 공짜로 지켜준다’는 식의 거짓 논리를 들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정부는 트럼프가 한국 관세를 때린 의도가 무엇인지, 향후 방위비 분담금 인상 관철을 위한 협상 카드는 아닌지 철저히 분석하고 관련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트럼프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일명 ‘반도체지원법’ 폐지를 공언한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경우 미 행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삼성전자는 47억5000만달러(약 6조9000억원), SK하이닉스는 4억5800만달러(약 6700억원)로 구체적인 보조금 액수까지 확정된 상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임자의 약속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행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는 일이 없도록 가용한 모든 역량을 동원하길 바란다.
트럼프는 이날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한국이 참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조선업과 관련해 백악관에 선박 건조 관련 기구를 신설하고 유관 기업들에게 세제 혜택도 주겠다고 다짐했다. 한·미 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처럼 양국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산업 분야를 적극 발굴하고 이들을 지렛대 삼아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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