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624달러로 전년보다 1.2% 늘었다. 2023년 2.7% 성장에 이어 2년 연속 증가했으나 2014년(3만798달러) 처음 3만달러 진입 후 11년째 박스권에 갇힌 신세다. 3만달러에서 4만달러로 진입하는 데 평균 6년 정도 걸린 미국, 독일 등과 비교하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쇠현상이 본격화된 것이 아니냐는 진단마저 나온다. 작년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4만달러 달성 시기를 2027년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와 내년 모두 1%대 저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미뤄 보면 이런 관측이 실현될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혁신과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부터 개선해야만 4만달러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는 십수년간 새로운 성장동력은 키우지 못한 채 기존 산업에만 매달려 왔다. 그 결과 10대 수출 품목 중 8개가 20년째 그대로다. 반도체는 2013년 1위에 올라선 뒤 작년까지 1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동차는 12년간 8번이나 2위 품목에 자리했다. 반도체·자동차에 의존해 성장하다 보니 이들 산업이 휘청이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렸다.
혁신산업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규제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승차 공유 플랫폼인 타다는 회원 170만명을 넘어설 만큼 호평을 받았지만, 택시업계 눈치를 본 당시 정부·여당의 2020년 사실상 ‘서비스 금지’ 입법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선진국 대부분이 도입한 비대면 진료는 현 정부 들어 의사단체 등쌀에 2023년 6월 시범사업 후 법제화 진척이 없다.
십수년간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속가능한 연금, 지역·필수의료 강화, 노동시장·근로시간 규제 유연화,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입시제도 개선 등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다. 지난달 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1.5%로 기존보다 0.4%포인트나 낮춰 잡고는 “그게 우리의 실력”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산업을 도입하려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피하다 보니 지난 10년간 하나도 도입되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표에 눈먼 정치권과 정부는 새겨듣길 바란다. 기업 투자와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는 규제부터 혁파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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