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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30주년…“파격적인 시도가 국악관현악 발전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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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11 11:04:45 수정 : 2025-03-11 11: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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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멤버 오경자 악장, 최용희 단원 인터뷰

“초창기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악기도 직접 나르고 악보도 직접 그리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갖춰진 좋은 국립극장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죠.” (오경자 악장)

 

“여기 아니었으면 못 만났을 좋은 선생님, 작곡자를 만나서 많은 곡을 연주했죠. ‘행복하게 30년을 살았구나’하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최용희 단원)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멤버인 오경자 악장(오른쪽)과 최용희 단원이 4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로비에서 인터뷰에 응하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국악관현악이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악기 개량과 다양한 실험 덕분에 국악이 관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며 지난 30년간의 성과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제원 선임기자

오경자 악장과 최용희 단원은 올해로 창설 30주년을 맞는 국립국악관현악단(악단) 창단 멤버다. 국악 현대화와 대중화를 이끈 악단 30년 역사의 산 증인이다. 최 단원은 “초창기엔 초대권을 나눠줘도 공연장을 채우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표가 없어 단원들도 예매하기 힘들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국악관현악을 향한 인식 변화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 악장 역시 “우리 악단은 늘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해왔다. 로봇이 지휘하는 공연부터 미디어아트와의 협업, 무대 위에서 연주자들이 움직이고 춤을 추는 실험도 했다. 이런 파격적인 시도가 국악관현악을 현대적으로 발전시켰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전공자 몰려든 대규모 오디션…. 경쟁률 60대 1

 

10남매 중 네 자매가 국악을 하는 오 악장은 언니 따라 국악인이 된 경우다. “언니가 가야금을 타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정말로 그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가야금 병창도 하고…. 그러다가 언니가 ‘국립국악고등학교라는 곳이 있는데 네가 그곳을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중학교 때 준비를 하고 시험을 봐서 합격했어요. 고등학교에서 다시 거문고를 선택해서 지금의 거문고 연주자가 된 거죠.”

 

박범훈 악단 초대 단장 대학 제자로 그가 이끌었던 중앙국악관현악단에서도 활동했던 최 단원은 늦게 국악에 입문한 경우다. “어려서 늘 밤이면 할아버지가 부르는 시조 소리를 듣고 자랐고, 아버지가 성악을 하셨어요. 그래서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선생님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야금반이 생겨서 배우게 됐는데, 악기가 충분하지 않아 일찍 가서 자리 잡고 악기를 잡으면 손에서 놓기가 싫었어요. 너무 좋아서 가야금을 끌어안고 잘 정도였어요.”

 

전공자를 위한 국악과는 1980년대 비로소 각 대학 음대에 생겨났지만, 이들이 활동할 전문 연주 단체는 극히 드물었다. 전통 연희나 실내악 중심의 활동이 대부분이었고, 국악관현악은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 1985년 KBS 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중앙국악관현악단 등이 출범해 걸음마를 떼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1995년 1월 악단 창단은 국악계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 악장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던 시절, 새 악단이 생긴다는 소식에 모든 국악 연주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회고한다. 실제 창단 모집 오디션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60대1의 경쟁을 뚫은 신입 단원과 국립극장 소속 악사 등이 합쳐진 46명 초대 단원들이 국악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연극인, 무용가들로부터 공연예술자로서 기본이었을 무대 매너를 배우고, 관객과 소통하는 법도 익히는 등 다양한 훈련을 받았어요. 박범훈 선생님 덕분에 처음부터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공연을 시도할 수 있었죠. 그런 노력끝에 국악관현악이 더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오 악장)

 

◆국악 현대화 발판된 악기 개량

 

악단 첫 과제는 국악관현악 정체성 확립이었다. 서양 오케스트라와 달리 국악관현악은 표준 편성이 확고하지 않았고, 단원 개개인 전공과 기량 차이도 컸다. 박범훈 초대 단장과 악장 정화영(장구 명인)은 맨 먼저 모든 단원에게 산조(독주곡) 연주를 한 번씩 시켜 들으며 파트 배치부터 정했다고 한다. 

 

특히 박범훈은 단순히 국악의 보존을 넘어 현대화와 대중화를 목표로 삼았다. 가장 큰 도전은 국악관현악의 소리 기반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였다. 전통 국악기만으로 대규모 합주를 할 때 음량과 음역의 한계, 서양 음악적 화성과 전조(轉調)의 표현 어려움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최 단원은 훗날 ‘시대를 앞서간 시도’로 평가받은 한·중·일 전통악단 합작 ‘오케스트라 아시아’ 무대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악기로 세계 사람들과 합주하는 게 당시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소리가 작아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쓰이던 12현 가야금은 음역과 음량이 현저히 부족했다. 국악기 개량이 절실한 이유였다.

 

최 단원은 “박범훈 단장님이 갑자기 ‘악기를 개량해야 한다’는 거에요”라며 “가야금 줄이 12현에서 22현으로 늘어나면서 연주법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고 말했다. 이후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량 가야금은 22현에서 다시 25현으로 발전한다​.

 

새로 만든 개량 악기를 단원들이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익히기까지는 고된 노력의 연속이었다. 최 단원을 비롯한 가야금 연주자들은 첫 창단 연주회가 예정된 5개월 동안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려 겨우 적응할 수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개량 국악기를 먼저 경험한 연주자들, 북한에서 개량 가야금을 개발한 동포 음악가 등에게서 간단한 주법을 배워오기도 했지만, 결국 밤새 악기와 씨름한 것은 단원 개인 몫이었다​.

 

개량 국악기 표준화·보급은 악단의 최대 성과다. 개량 25현 가야금의 등장은 국악관현악 음폭을 비약적으로 넓혔고, 합주에서의 조화와 표현력을 향상시켰다. 오 악장은 “이제는 전국에 25현 가야금을 안 쓰는 단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개량 해금, 개량 대피리 등 다른 악기들에서도 음량 증폭과 반음계 보완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어, 전통음악으로는 어려웠던 다양한 현대적 작품들이 작곡·연주될 수 있게 되었다. 최 단원은 “우리 악기가 획기적으로 앞으로 나아간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관객·연주자 모두가 사랑한 무대… 그리고 30주년”

 

오 악장과 최 단원은 악단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4대 예술감독 황병기(2006~2011), 5대 예술감독 원일(2012~2015)과 함께 하던 시절도 떠올렸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레퍼토리를 체계화하고 음악적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최 단원은 “황 감독이 오면서 우리가 표현해야 할 한국적 미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 악장은 “황 감독이 엄격한 예술적 기준을 세워서 연주자들이 한층 더 진지하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최연소 예술감독이었던 원일은 파격과 실험으로 악단을 이끌었다. 오 악장은 “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국악에 현대 예술 장르를 적극적으로 접목했다”며 “덕분에 국악을 낯설게 생각하던 젊은 관객층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최 단원은 “다양한 실험적인 공연이 펼쳐지면서 우리 악단이 더욱 역동적이고 젊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악단은 미디어아트, VR 기술 등을 접목한 혁신적인 공연도 다수 선보였다. 오 악장은 “이러한 시도들이 국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해주었다”며 “우리 단원들에도 큰 자극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악단 30년 생활 중 잊지 못할 공연으로 오 악장은 대표작이 된 ‘겨레의 노래뎐’을 꼽았다. 한민족의 삶과 역사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무대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음악회였기 때문이다.

 

최 단원은 지휘자의 중요성을 실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박범훈 선생님의 곡 ‘신모듬’을 정치용 지휘자님과 함께 연주했던 무대가 기억나요. 자주 연주하던 곡도 지휘자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소름 돋는 경험이었어요.”

 

악단은 12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을 연다. 오 단장은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면서 단원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 관객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으로 연주곡을 선정했고 원일 전 예술감독 신곡도 초연한다. 또 마지막에는 은퇴 단원 열세분이 함께 연주하는 뜻깊은 자리”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최 단원은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앞으로 국립극장이 법인화된다고 하니 단원들이 많이 불안해한다. 우리가 누렸던 행복을 후배들도 계속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걱정과 당부를 함께 전했다​.

 

오경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은…●국립국악고 ●한양대 국악과 학·석사,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제5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제2회 서울국악대경연 현악부 금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국립극장장 표창

 

최용희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은...●중앙대 한국음악과·교육대학원 ●중앙대·서울국악예술고 강사 ●중앙국악관현악단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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