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을 병원에서 시작했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가 본 적 없던 병원 입원실을 올해서야 가 보게 되었다. 아파서 간 것은 아니었다. 같은 과 석사 과정에 있는 중국인 유학생 H양이 1월 초 새벽 갑자기 황체가 파열되며 심한 출혈을 일으켜 쓰러졌다. 마침 한국에 여행 온 그녀의 사촌 동생이 인근에 사는 다른 중국인 유학생에게 연락해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병원에 도착한 H양은 곧바로 응급 수술을 받았다. 그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병문안을 하였는데, 도착했을 때는 H양이 이미 입원해 수혈받고 있었다.
일주일 후 퇴원할 때 H양은 병원에서 발급한 진료비 고지서를 받았다. 고지서에 반영된 금액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 액수라 별다른 보험 처리는 하지 않았다. H양은 전체 금액의 30%만 자비로 부담한 후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2025년 음력 설날 밤 중국에 있는 친언니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가 집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져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생명이 위급하다는 소식이었다. 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빨리 중국으로 오라고 했다. 영상통화로 상황을 파악한 후, 바로 다음 날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했다. 중국에 도착한 날은 설날 기간이라 의사 대부분이 휴가 중이었고, 어머니는 응급 수술을 바로 받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200만원을 선납하고 입원했으며, 매일 100만원씩 진료비를 선납하며 신경외과에서 뇌 상태를 지켜보았다. 일주일 후, 어머니는 정형외과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주민 보험에 가입했어도 입원 후 진료비를 먼저 내야 하고,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출생지 보험기관에 신고한 후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출생지 병원이 아니라서 일주일 내내 보험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결국, 수술은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20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선지급했다. 보험 처리가 되면 퇴원 시 낸 진료비의 60%를 상환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은 사람이 태어나고, 고쳐지고, 죽어가는 곳이다. 생로병사의 공간인 병원에서는 사람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병원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다르다. 한 달 사이에 중국과 한국에서 입원한 친구와 어머니를 돌보며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 따른 사람들의 온도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훌륭한 시스템은 사람으로서의 따뜻함과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미비한 시스템은 인간의 차가운 면과 악의를 드러냈다. 중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그 대답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이어서 매우 아쉬웠다.
상호문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어느 나라의 의료 제도가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세상 어디서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마음마저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탕자자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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