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에 3월23일까지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관람했다.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이라는 네 명의 작가의 전시들로 구성된 ‘올해의 작가상 2024’를 보며 나는 K컬처의 외연 및 내포적 확장에 대해 꿈을 꾸어보았다. K컬처는 사실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를 주로 일컫는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임윤찬·조성진을 비롯한 여러 클래식 연주자들의 콩쿠르 수상 및 발레리노 박윤재의 로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의 우승 등을 보며 K컬처의 외연이 대중문화로 국한되지 않고 한국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는 꿈을 꾸어본다.
K컬처의 외연적 확장만이 아니라 그 내포적 의미에서의 확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것은 분명 개별 작품들이 전달하고 있는 의미의 깊이가 확장되어 한국 문화 전반의 수준이 깊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전시를 보며 한국 문화에 대한 이런 꿈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느꼈다. 특히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던 전시는 제인 진 카이젠 작가의 비디오 작업들이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그의 작품들에는 강렬한 영상미와 더불어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고 현재와 얽혀 있는 과거의 문제를 어떤 지향점을 두고 풀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자면 ‘잔해’라는 작품은 바닷속 깊이 묻힌 제주의 역사적 기억이 소창으로 된 직물을 매개로 현재와 엉켜 있는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작가에게 과거는 현재와 단절된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에서 생명과 죽음의 순간에 사용되었던 소창을 통해 현재 및 미래와 매듭져 있다. 특히 이 작품 속에 포함된 미군의 선전 필름 푸티지는 실재했던 미군정기의 역사적 순간들을 아직 과거가 해소되지 않은 현재로 소환한다.
이 작품은 과거의 역사적 시간의 잔해에서 현재가 생겨나고, 미래 역시 과거의 매듭을 어떻게 대면하고 푸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만약 이런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비디오 아트 작품이 외연이 확장된 K컬처에 포함될 수 있다면, 그리고 내포가 확장된 K컬처가 이러한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다면, K컬처의 의미 있는 영향력이 전 세계의 예술들과 공명하며 미래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소프트파워로서의 K컬처가 시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 역할을 넘어서 풍성함과 깊이를 가진 K컬처가 펼쳐낼 높은 문화의 꿈을 꾸어보는 것도 값진 일일 것이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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