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 아빠’를 양산한 조기유학 붐은 2000년 규제 완화로 촉발됐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0∼2008년 조기유학을 떠난 초·중·고교생은 15만4000명을 넘었다. 연도별로 보면 2006년 2만9511명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탔는데, 입시제도 변화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국제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 등이 내신을 대폭 강화한 데다 대입 외국어 특기자 전형 규모도 급격히 줄었다. 수능 영어과목도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영어 능통자의 입시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다. 당시 서울 강남에서 ‘단기 어학연수’로 재미를 봤던 학원가는 최근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치부 운영으로 사교육 시장을 이끌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13일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2021년(23조4000억원) 이후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3년과 비교하면 1년 새 학생은 521만명에서 513만명으로 1.5%(8만명) 줄었는데 오히려 사교육비 총액은 7.7%(2조1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년보다 9.3% 증가한 47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교육부가 이와 함께 조사 결과를 처음 공개한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사교육 실태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으로 초중고생 못지않은데, 과목별로 보면 영어가 41만4000원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영어유치원의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에 달했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에선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레벨테스트인 ‘4세 고시’ 열풍이 거세다. 두돌이 갓 지난 영아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수학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7세 고시’를 준비한다. 언론에 소개된 6세 남아는 유치원에서 오후 3시 하교한 뒤 저녁 전에 숙제나 수학연산 학습지를 풀고, 밥 먹고 나서는 과외 교사와 영어회화나 한글 공부에 열중한다. 이렇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의대반’, ‘영재 입시반’으로 다시 사교육이 이어진다. 입시제도의 대대적인 개선 없이는 우리 아이들을 사교육의 굴레에서 구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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