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이용당한 ‘자유’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3-17 23:34:02 수정 : 2025-03-17 23:34:02

인쇄 메일 url 공유 - +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장 기록을 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취재는 발언 검증의 연속이었다. 탄핵심판 변론에서 윤 대통령 측은 12·3 비상계엄에 투입된 병력 규모가 57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반면 국방부는 1500여명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야당이 드론 방어 예산을 비롯한 국방비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다고 주장했지만 방위사업청은 국회 국방위원회 차원에서 결정됐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 측 발언의 의도를 묻고자 통화한 전문가들은 의아해했다. 헌법 위반 여부 등 법리 공방에 힘을 기울여야 할 탄핵심판에서 지엽적인 사실관계까지 따지는 전략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지지 세력, 차후 정권 재창출을 위해 국민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론전에 치중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한 부장판사는 “대통령 측의 발언이 모두 언론에 노출되니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경준 사회부 기자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윤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겠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거대야당의 자유헌정질서 파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인근을 뒤덮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많이 보이는 단어 중 하나도 ‘자유’다.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 사랑은 유명하다. 검찰총장 시절부터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인생 책으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재임 기간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자유주의는 개인과 기업 등의 자유로운 시장 경제활동을 추구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통령실 이전, 부처 신설 등으로 예산을 적극 활용했고 의대 증원 시도로 세계 최고로 꼽힌다는 의료 시스템에 혼란을 일으켰다. 교육계에도 ‘사교육 카르텔’ 의혹을 제기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문항 폐지를 추진했다. 심지어 개 식용 금지, 해외 직구 규제 시도로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에도 외환시장 등을 안정화하기 위해 거액의 예산이 투입됐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자주 등장한 단어는 ‘계엄’(67회), ‘국가’(28회), ‘정부’(21회)였다. 취임사에선 35번이나 ‘자유’를 언급한 대통령이었는데 말이다. 거대야당의 횡포를 비판하면서도 근거는 과도한 규제 도입 시도나 난무하는 포퓰리즘 정책 등이 아닌 ‘야당의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호소였다.

 

결국 자유주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공개석상 발언이 될 수도 있었던 탄핵심판 최종진술에서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는 사라졌다. 오히려 갈 곳 잃은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극대화됐다. ‘다수’가 인정한 대통령을 지지한 쪽과 마찬가지로 ‘다수’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거대야당이 대립하는 형국은 구조상 대화가 불가능하게 됐다. 어쩌면 비상계엄이 경종을 울린 것은 특정 세력의 횡포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필요성일 수 있다.


안경준 사회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은빈 '화사한 미소'
  • 박은빈 '화사한 미소'
  • 르세라핌 카즈하 '청순 대명사'
  • 이성경 '여신 미소'
  • 김혜수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