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시다, 러브(LOVE).”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김태리가 이병헌에 교제를 하자며 고백하는 장면이다. 시대적 상황과 여러 위기 속에서 싹 틔운 사랑은 깊고 진했다. 최근들어 지빙자치단체들은 앞다퉈 ‘러브 만들기’에 혈안되고 있다. 혼인율 감소와 저출생으로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 의식이 커지면서 지자체가 ‘중매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남녀 만남에 적극 개입하며 4∼5시간 행사에 수천만원의 혈세를 들이붓고 있다.
23일 대전시에 따르면 미혼 청춘남녀 만남 행사인 ‘대전 썸타자(SUM-TAJA)’를 4월부터 6월까지 모두 6회에 걸쳐 진행한다. 예산은 8000만원을 투입하는데, KB금융그룹이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지난해 대전시에 기탁한 10억원의 기금을 활용한다. 시는 KB금융그룹의 기탁금을 출산장려정책에 쓴다. 육아휴직자 대체인력 지원, 아이돌봄 사업, 건강검진 지원, 난임부부 난임치료비 지원, 산후건강관리지원, 만남지원 등 6개 사업을 추진한다.

‘대전 썸타자’는 대전시에 거주하며, 사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또는 대전 소재 직장에 근무하는 27세~40세 미혼 남녀 60명을 대상으로 한다. 소상공인을 절반 이상 우선 선발한다. 4월에서 6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3개월 간 공통모임(60명) 3회, 20명씩 소모임그룹 3회 진행한다. 장소는 라미컨벤션웨딩홀과 글램핑장 등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은 대부분 1인 사업체 운영자이거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해 업무 특성상 직장 내 교류가 적고, 근무 시간과 휴일이 일정하지 않아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대전시는 소상공인들에게 특별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소중한 인연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지자체, 수천만원 들여 커플매칭 행사 왜?
대전 뿐 아니라 전국의 지자체가 하루 이틀 미혼남녀 커플매칭 행사에 수천만원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충남 논산시에서 미혼남녀 만남행사 ‘나도 솔로’를 열어 4쌍의 커플이 탄생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청년 혼인율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인 선샤인스튜디오에서 만30세 이상 43세 이하 미혼남녀 18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탑정호와 자연휴양림을 돌면서 차담데이트, 일렉트로닉댄스뮤직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18명의 참가자 중 4쌍(8명)이 커플이 탄생했다. 논산시는 짝을 이룬 남녀가 결혼까지 하면 최대 700만원인 청년결혼축하금을 상향지급한다고 밝혔다.
같은해 5월 세종시도 ‘미혼남녀 인연만들기’ 행사를 열었다. 어진동 코트야드바이메리어트세종호텔에서 진행된 이 행사엔 세종시 미혼남녀 40명이 참가했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게임, 대화하기, 커플 레크리에이션 등 4시간 동안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 운영됐고 6쌍의 커플이 만들어졌다. 행사비는 2000만원으로 전액 시비이다.
충청권 뿐만 아니다.
대구시는 ’너랑나랑 두근대구‘, 전북 남원시는 ’하늘이 무너져도 내짝은 있다‘, 경남 거창군은 ’오늘은 썸데이‘ 등 각종 미혼남녀 커플 매칭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 안양군, 전북 군산시, 경남 창원시 등에서 만남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여성가족위원회)실이 전국 각 지자체에서 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최소 30곳(광역단체 2곳, 기초단체 28곳)에서 34개의 미혼남녀 만남 행사를 진행했거나 추진하고 있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저출생에 매년 결혼 건수가 줄어들다보니 만남-결혼-출생으로 이어지는 데에 지자체가 직접 관여하겠다는 것인데 이와 함께 남녀 만남행사 자체에 지역사회에서도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시정홍보가 된다”고 말했다.
◆여론 뭇매에 폐지·여성참가자 강제동원 ‘잡음’
세종시는 2013년부터 남녀 만남 행사를 운영했는데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중단한 후 지난해 다시 재개했다. 세종시처럼 꽤 오래 전부터 추진했다가 이런저런 비판적 여론에 관련 사업을 없앤 지자체도 많다.
충북 청주시는 2023년 7월 미혼남녀 30명을 대상으로 한 ‘청주 썸데이’ 행사를 열었다가 “공공기관이 미팅 주선 기관이냐”는 악평만 듣고 이듬해 사라졌다. 대전 서구는 2021년 관내 공공기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심통방통, 내짝을 찾아라’ 만남 주선 사업을 추진했는데 “특정 계층의 특권화를 조장한다”는 질타를 받고 철회했다. 같은 해 광주광역시도 비슷한 행사를 마련했다가 출산 가능연령으로 한정했다는 이유로 시의회와 시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보류했다.
직업군을 자격 요건에 넣은 지자체도 많았다. 강원 태백의 경우 공공기관과 학교·공무원으로 참가자 요건을 정했고, 울산은 현대자동차회사와 시군구·공기업 직원, 전남 영암은 공무원, 현대삼호중공업, 전북 나주도 시청 공무원·공공기관·학교 등으로 특정 직업군의 참가를 유도하면서 비판여론이 일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여성 참가자가 없어 사업을 중단했다.
전남 화순군은 2023년 6월 ‘커플매칭 화순사랑 더하기’ 공고를 냈다가, 여성 참가자를 모집하지 못해 행사를 취소했고, 충북 진천군, 제주 서귀포시, 경남 함안군, 경기 가평군 등도 같은 이유로 행사를 멈췄다.
이같은 상황이 생기자, 여성 공무원을 행사에 강제에 동원한 지자체도 있었다.
경북 예천군은 지난해 ‘1박2일 청춘공감 심쿵야행’을 추진하면서 운영 계획서에 ‘여성참여자 위주 참여 유도’라고 적은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2022년 전남 해남군 보건소가 작성한 ‘땅끝 솔로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를 보면 여성 참가자 15명 중 자발적 신청은 1명으로 기재돼있어, 14명은 반강제로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참가자 14명 중 8명은 행사 담당인 보건소 여성직원이었다.
이연희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4060명이 지자체 소개팅 사업에 참여한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24명 밖에 안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1%도 채 안되는 성공률이다.
지역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중매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 발상”이라며 “저출생 대책이라기보다 사실상 지자체장의 홍보성 사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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