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5개 지역 3488채 전소
국내 최대 송이 산지 초토화
돼지·닭 등 수만 마리도 폐사
긴급재난금 1인 30만원 찔끔
피해 커 임시주택 확보 난항
“언 발에 오줌누기 지원” 지적
“자식 같던 돼지들이 하루아침에 다 죽었어. 눈앞이 캄캄해….”
화마가 온 마을을 삼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31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김모(60대)씨는 화마에 휩쓸려 뼈대만 남은 축사 기둥을 매만지고 있었다. 지난 25일 오후 5시쯤 강풍을 타고 날아든 축구공만 한 불덩이는 김씨의 유일한 재산인 축사를 뭉개버렸다. 돼지 1만마리가 불에 타 죽고 농기계까지 녹아내렸다. 김씨는 “지난해 대출을 받아 축사를 새로 단장했는데 돼지는 물론 사료까지 모두 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김씨 수중에는 예금액 800만원밖에 없다. 김씨는 대출금은 물론 노모의 요양병원비와 공과금, 네 가족의 식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한우와 양봉 농가의 피해도 크다. 경북에선 이날 기준 한우 34마리가 폐사하고 돼지 2만4452마리, 닭 5만여마리가 폐사했다. 양봉에선 3090통이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송이 주산지도 초토화됐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안동을 비롯해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지며 국내 최대 송이 산지를 집어삼켰다. 산림조합 관계자는 “송이산에 산불이 나면 송이 생산 회복에 3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은 산림은 물론 어촌에도 막심한 생채기를 남겼다. 김부호(77)씨는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작은 어촌인 노물항 인근에서 칠십 평생을 살아왔으나 갑작스럽게 닥친 산불로 “전 재산을 잃게 됐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40여년간 생계의 터전인 2t짜리 고기잡이배인 해진호와 집, 트럭 한 대까지 이번 산불로 몽땅 다 탔다”며 “앞으로 살아야 할 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졸지에 재산을 몽땅 잃은 영남권 산불 이재민을 돕기 위한 정부의 지원책이 하나둘 나오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흘 가까이 지속된 대형 산불로 역대급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 정부가 지원하는 구호금은 수천만원에 불과해 산불 피해 주민들은 두 번 눈물을 흘리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영남권 산불로 가족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유족에게는 1인당 2000만원, 부상자에겐 장해 등급별로 500만원 또는 1000만원이 구호금으로 지급된다. 이번 산불로 발생한 주택 피해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산불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경북 의성·안동·영덕·영양·청송의 경우 3685채의 주택이 피해를 봤는데 이 중 3488채(95%)가 전소됐다. 정부와 경북·경남도는 피해 지역에 임시 주택을 설치하고 있으나 이재민이 많아 임시주거시설 확보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산불 피해가 사회재난인 까닭에 주택이 완파됐을 경우 주거비 지원금은 2000만~3600만원에 불과하다. 이번 산불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집을 다시 짓는 데 턱없이 부족한 돈”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 주민들에게 1인당 3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오지만 이 또한 일상 복귀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민간단체 기부금은 모금이 끝나고 배분하는 게 원칙인데 무안 여객기 사고에 이어 이번에도 주요 단체들과 협의해 인명·주택 피해자에게 긴급 생계비 300만원을 선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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