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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그래도 삶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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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03 23:00:17 수정 : 2025-04-03 23: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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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Flow)’는 관객을 지구의 어느 낯선 공간으로 초대한다. 어디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이곳에는 사람이 없다. 한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있지만 지독한 홍수로 도시는 물에 잠겨 폐허가 되었고, 물이 된 곳에서는 이제 고래가 유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지구 곳곳에서 펼쳐진 초현실적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인간은 기후변화로 예측 불가능한 땅이 되어버린 이곳을 떠났고 이곳에는 여기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만 남았다. 주인 잃은 고양이는 버려진 집에 스며들어 잠을 자고 개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닌다. 사슴떼는 질주하며 재난의 징조를 경고한다.

영화는 인간이 야기한 절멸의 위기를 치유하는 자연의 힘을 노래한다. 또 한편으로는 분열되고 고립된 개체들이 공존을 실험하며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연대의 과정에 대한 알레고리의 영화로 읽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무엇을 느끼든 영화는 더없이 아름답고 다이내믹하며 극사실적이고도 황홀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사분오열되고 갈등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정신적 고통의 치유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분명히 더없이 아름다운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개와 고양이, 카피바라(물돼지), 여우원숭이(리머), 뱀잡이수리이다. 각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한데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의 눈으로 보아도 그 관찰의 정밀함은 찬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유의할 점이 있다. 개체들의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한 장소에서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영화적 설정이라는 점이다. 남미에 사는 카피바라와 아프리카에 사는 뱀잡이수리가 함께 살 수는 없다. 동물원에서가 아니라면 이들은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상상력이 시작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각자의 고유한 습성을 지닌 이 캐릭터들은 홍수로 터전을 잃고 낡은 배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종 특성과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갈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라면 이들은 협력해야 한다. 협력은 생존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독립적 캐릭터들이 경계심을 풀고 나와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참으로 유쾌하고 설득력이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의인화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들과 달리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각자의 고유한 종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갈등을 조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영화의 제목은 ‘홍수(Flood)’가 아니라 ‘흐르다(Flow)’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흐르듯이 함께 살아가는 삶. 영화가 ‘흐르다’를 제목으로 택한 이유이다. 재난 속에서도 솟아날 희망과 삶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꼭 보아야 할 영화. ‘플로우’,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기를 권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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