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칸 SUV’ 수요 적은 불모지 한국서
주행력 기본·최대 700㎏ 적재로 인기
800㎜ 깊이 도강·진흙길·경사까지 거뜬
국내 성공 발판 삼아 다음달 해외 노크
기아의 첫 정통 픽업트럭 ‘더 기아 타스만’이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타스만 등 새로운 픽업트럭 모델을 속속 선보이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관련 시장 확대를 이끌지 주목된다.
6일 기아에 따르면 2월13일 계약이 시작된 지 보름 만에 타스만은 4000대가 팔렸다. 이는 출시 한 달도 되지 않아 작년 전체 픽업트럭 판매량(1만3475대)의 30%를 팔아치운 성과다. 특히 오프로드(비포장도로) 전용으로 만들어진 ‘X-프로(X-Pro)’ 트림이 계약 물량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 픽업트럭 시장은 좋은 상황이 아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완성차 5사의 픽업트럭 판매량은 4만2619대였다. 하지만 이후 2020년 3만8117대, 2021년 2만9567대, 2022년 2만8753대, 2023년 1만7455대, 2024년 1만3475대로 지속적으로 판매량이 감소 중이다. 현재 국내시장에선 타스만 외에 한국GM의 콜로라도와 시에라, KG모빌리티(KGM)의 렉스턴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 등이 픽업트럭으로 판매되고 있다. KGM은 최근 무쏘 EV 출시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투싼을 기반으로 한 픽업 싼타크루즈를 출시했지만, 국내에는 출시하지 않았다. 픽업트럭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화물칸이 달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은 점도 반영한 결정이었다.
기아는 타스만에 기아만의 기술력을 집약했다. 타스만은 오프로드 주행 전용 기능, 최대 700㎏ 적재 공간 등이 강점이다. 픽업트럭의 단점으로 꼽혔던 2열 좌석의 불편함도 적극 개선하면서 SUV와 패밀리카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기아는 이달 1일 강원 인제 부근 박달고치 임도(산악도로) 코스와 70여㎞의 온로드(포장도로) 코스, 7개의 오프로드 코스까지 준비된 시승회를 진행했다. 온로드 주행에선 타스만 익스트림 트림을, 오프로드와 임도 코스에선 X-Pro 트림을 시승했다.
타스만을 타보고 느낀 첫인상은 ‘터프함(거침)’, ‘야성적’, ‘남성적’이라는 느낌으로 기록됐다. 전장 5410㎜에 휠베이스 3270㎜의 타스만은 덩치가 크기로 유명한 미국 차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묵직함도 담겨 있었다. ‘네모’ 위주의 디자인과 더불어 모서리를 굴곡 있게 마감해 투박하면서 부드러운 느낌도 줬다.
픽업트럭의 핵심 공간인 적재함은 길이 1512㎜, 너비 1572㎜, 높이 540㎜로 약 1173ℓ의 저장 공간을 만들어냈다. 휠 하우스 간 너비는 1186㎜로 각 국가별 표준 팔레트 수납이 가능하다.

타스만 곳곳에는 기아만의 섬세함이 적용됐다. 우선 오른쪽 뒷바퀴 펜더에는 사이드 스토리지(저장공간)를 마련해 자주 쓰는 공구 등을 담을 수 있다. 운전석 우측 물품 보관함 또한 커버를 간이 테이블로 쓸 수 있게 했다.
주행 능력도 뛰어났다. 공도 주행의 경우 픽업트럭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승차감이 좋았다. 가솔린 2.5 터보 엔진과 8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해 최고 출력 281마력(PS), 최대 토크 43.0㎏f·m의 동력성능을 갖춘 동시에 앞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저속에서는 가벼우나 속도에 따라 무거워지는 스티어링 시스템 덕에 운전하는 맛이 있는 차였다. 픽업트럭임에도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거의 없었다.
임도와 오프로드 코스에선 타스만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오프로드 코스 약 5.2㎞ 구간에서 △최대 800㎜ 깊이의 물속을 달리는 도강 코스 △진흙과 자갈로 구성된 모굴 주행 △높은 경사의 업앤다운힐 코스 △높은 경사각 주행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사이드힐 코스 △서스팬션 강성을 체험할 수 있는 범피 코스 등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라운드뷰 모니터였다. 험로 주행 시 차량 하부를 비춰 주는 시스템으로, 오프로드 주행 시 전방이나 하부가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카메라를 통해 사각지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안전 주행이 가능했다.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픽업트럭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큰 걸림돌인 ‘연비’가 걱정됐다. 제원상 복합연비는 17인치 휠 2WD 기준 8.6㎞/ℓ다. 하지만 이날 시승을 하고 확인한 연비는 5~6㎞/ℓ 정도였다.
기아 측은 하이브리드 등 출시 가능성에 대해 “최근 친환경차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
타스만은 ‘전통 픽업트럭’이라서 도심 생활이 많은 국내 정서에 안 맞을 수도 있어 보였다. 대신 캠핑 등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나 ‘세컨카’가 필요한 고소득층에게는 적절할 수 있다.
기아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공략을 준비 중이다. 픽업트럭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한국보다는 해외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기아는 “(관세 장벽이 생긴) 북미 진출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호주나 중동 같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5월 말부터 권역별로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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