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계엄 요건 강화 등 검토
임기단축 권력구조 개편은 반대
대선 공약으로 추진 입장 밝혀
국힘엔 “개헌 물타기 생각 말라”
민주 지도부도 “시기 부적절” 방어
“유력주자, 판 흔들 필요없어” 관측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국민투표법 개정을 전제로 5·18 광주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방안이나 계엄 요건을 강화해 군사 쿠데타를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원포인트 개헌론’ 입장을 밝힌 것은 유력 대권 주자에게 집중되는 ‘개헌 입장 공표 압박’을 차단하는 동시에,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헌 논의가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 되는 것에 선을 긋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 봇물 터진 개헌 필요성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는 대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파면으로 이어진 일련의 정치 상황과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에 대한 책임론 등이 개헌 논의에 묻혀서는 안 된다는 계산이다. 조기 대선까지 60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권의 개헌 요구에 대응하면서도 대선을 집어삼키는 핵심 이슈가 되는 것은 차단하겠다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은 셈이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이 필요하다, 동의한다’고 거듭 밝히면서도 “민주주의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면서 “개헌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생각을 국민의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 임기와 단임 또는 연임 여부, 국무총리 추천제 도입 여부, 대통령 결선투표제, 자치분권 강화, 기본권 강화 등의 주요 개헌 쟁점 등을 나열한 뒤 “논쟁의 여지가 크고, 실제 결과는 못 내면서 논쟁만 격화되는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각 대선 후보들이 국민에게 약속하고, 대선이 끝난 후에 최대한 신속하게, 개헌을 그 공약대로 하면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와 합의 발표한 ‘정치교체 공동선언’에서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정치교체를 위해 권력구조 개편 및 정치개혁을 추진키로 하고 △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하여 별도 기구를 설치 △새정부 출범 1년 내 ‘제7공화국 개헌안’ 성안 △개헌안에 분권형 대통령제, 책임총리, 실질적인 삼권분립 보장 △20대 대통령 임기 1년 단축해 2026년 대선과 지방선거 동시 실시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하고, 대선 이후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추진하는 방안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다만 대통령 임기와 중임제를 포함한 권력구조는 당장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서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하자는 주장에서부터 4년 중임제를 도입하자거나, 책임총리제 도입 등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논의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해당 논의 자체가 조기 대선 전에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다만 “5·18 민주화 등에 관한 5·18정신, 그리고 계엄 요건 강화 정도는 국민투표법이 개정돼서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하다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내란종식, 내란 극복을 지금 당장 중요한 과제로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도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면서 “다만 국민의힘은 탄핵 이후 정국을 개헌 이야기로 빠져나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합의가 가능한 것은 합의해서 부분적으로 개헌을 시도하되, 대통령 임기 등을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 등은 정치권의 합의가 쉽지 않은 만큼 조기 대선과 함께 처리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라고 이 대표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일제히 전면적 개헌론에 선을 그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헌을 언급했다. 지금 개헌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언주 최고위원 역시 “스스로 위헌 정당의 이런 상황을 해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 논의를 국민의힘과 할 수 있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거들었다.

이 대표가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입장을 내놨지만, 권력구조 개혁이라는 핵심 쟁점이 빠진 만큼 이 대표를 향한 개헌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이 대표가 개헌 논의에 깊이 뛰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통화에서 “이 대표가 개헌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면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는 제안은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할 것이고, 사실상 개헌에 대한 절박성이나 시급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개헌은 언제나 유력주자가 아닌 후발 주자가, 정권 초기가 아닌 정권 말기에 약한 쪽에서 제기하는 것이지 이 대표처럼 유력주자가 블랙홀이 되는 개헌 논의로 판을 흔들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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