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함 부실 보관, 투표용지 인쇄날인 등 문제 지적
‘외부의 손’ 개입 의심… 국힘 의원들 보완·폐지 잇단 주장
윤석열 선출 대선 사전투표율 36.9%… 역대 최고 ‘모순’
“사전투표 진보 투표자 유인”… 전체 결과는 민의 반영
보수·진보 모두 진영 논리에 따라 부정선거론을 제기해 왔는데, 보수 진영은 특히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의 뿌리가 깊다. 이 뿌리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유리한 결과를 얻을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으로 확대됐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사전투표제를 폐지하자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민의힘에서 2건 발의됐다.

김민전 의원이 지난해 7월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섰다. 김 의원은 “사전투표함 보관 등 선거관리의 연속성, 선거절차의 투명성·공정성을 담보하기에 부족하다”며 “투표 종료 후 투표함의 운반 등에 따른 불미스러운 사고나 의혹 등이 상시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지 이송 과정에서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할 수 있다고 의심한다.
장동혁 의원은 지난달 사전투표제 폐지 법안을 냈다. 장 의원은 “관외 투표의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지를 우체국에 전달하고 나면 그것이 분류돼 해당 선관위로 가는 동안에는 우체국이 전적으로 관리한다”며 “그 시간 동안 우체국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누구도 감시 못 하고 선관위도 개입하지 못하고 투표 참관인도 전혀 참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달희 의원은 지난달 사전투표제 보안을 강화하는 법안을 냈다. 그는 “투표함 송부 시 투표함 탈취 등 불상사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투표함과 사전투표함 송부 과정에 경찰공무원의 동행을 의무화하자고 주장했다.
사전투표함이 부실하게 보관된다는 의혹은 제도가 도입된 후 수차례 제기된 문제다. 이 의혹이 실제 사례로 확인되자 보수진영의 사전투표 불신은 더욱 커졌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당시 경기 부천시 선관위가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을 폐쇄회로(CC)TV가 작동하지 않는 장소에 보관해 논란이 일었다. 제주에서도 우도면에서 진행된 사전투표함이 CCTV가 없는 선관위 사무국장 방에 보관된 사실이 알려져 질타가 쏟아졌다. 공직선거법상 우편투표함과 사전투표함은 영상정보처리기기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사전투표의 경우 관리관이 투표용지에 직접 날인을 하지 않는 점도 보수진영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지점이다.
현행법은 사전투표 시 관리관이 투표용지 발급기로 용지를 인쇄하고 ‘사전투표관리관’ 칸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선거인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사전투표관리관이 직접 날인할 경우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선거 비효율이 초래된다며 공직선거관리규칙을 통해 ‘인쇄날인’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보수진영에선 인쇄날인을 허용함으로써 투표지를 대량 출력할 수 있게 돼 부정선거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목소리는 그동안 국정감사 등을 통해 꾸준히 표출됐다. 최수진 의원은 지난달 사전투표에서 인쇄날인을 금지하고 사전투표관리관이 투표용지에 자신의 도장을 찍도록 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보수가 사전투표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선거 유불리와 연관이 있다. 사전투표가 보수에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통념일 뿐 정설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역대 총선 최대 사전투표율(31.3%)을 기록한 지난 22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특히 사전투표함 개표 후 전국 지역구 50여 곳의 당락이 바뀌었는데, 모두 민주당 후보들이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투표를 한 전체 유권자 중 60대 유권자가 314만1737명(22.7%)으로 가장 많았음에도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서 불신론이 팽배했다.
반면 20대 대선에선 사전투표율이 36.9%로 역대 선거 중 최고치를 기록했음에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결국 선거 당시 정치 지형과 후보 개인 지지율이 중요할 뿐, 사전투표율이 특정 진영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기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들과 일부 보수 유튜버들이 조작설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며 사전투표 불신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공공거버넌스연구소)는 “지금까지 선거 결과를 보면 사전투표 제도가 보수에 불리하다는 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사전투표가 진보 성향 투표자들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고, 보수성향 지지자들이 사전투표를 불신해 본 투표를 많이 하다 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를 ‘나무’가 아니라 ‘산’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민의가 사전투표와 본 투표로 나뉠 수는 있으나, 전체 투표의 결과는 결국 같을 수밖에 없다. 선거 관리에서 일부 미흡한 점이 발견됐지만 지금까지 당락을 바꿀 정도의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선관위는 다가오는 6·3 대선에서 내달 29일과 30일 이틀간 사전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를 24시간 공개하는 등 부정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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