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정당성 흔들고 사회통합 저해”
보수계 “사전투표제 민심 왜곡” 개편 주문
진보계 “중대선거구제로 개헌 논의 필요”
선관위 비위에는 이구동성 관리∙감독 강조 끝>
전직 국회의장∙부의장, 총리, 헌법학자 등 국내 원로들은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권력의 정당성을 흔들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제도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최근 세계일보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사즉생’의 정치 문화와 그것을 부추기는 ‘승자독식’ 선거제도, 투개표 편의성이 불러온 억측과 일부 제도적인 문제를 부정선거 논란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중앙선관위의 부실 운영도 문제로 지적했다. (인터뷰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전에 진행됐음을 밝혀둔다.)
보수 진영 출신의 원로들은 투표의 편의성을 높인 사전투표 제도가 표심을 일부 왜곡하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진보 진영 출신 원로들은 대결 정치를 부르는 선거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며 개헌을 주문했다. 이들은 제도적인 문제가 부정선거 의혹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며 이를 개선해나가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투개표 조작 주장은 자해 행위”
부정선거론의 핵심 줄기인 투개표 조작 의혹에 대해 원로들은 ‘잘못된 맹신’이라고 일축했다.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국민의힘 출신)은 “투개표에 부정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구시대적인 억지”라며 “사전투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도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실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부정선거의 실체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여야가)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정치권의 자해 행위”라고 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더불어민주당 출신)은 “선관위 내부에 여야 지지자들이 다 있는데 누군가 한쪽에 유리한 부정을 했다면 지금까지 폭로가 없었겠느냐”며 “투개표 때 여야 관계자들이 포함된 참관인이 한 표 한 표 현미경 잣대로 판단하는 투표 문화에서 부정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선거 시스템에서 부정선거는 망상”이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한 구실이자 수단”이라고 했다.

“승자독식 구조로 불신 증폭…개헌 必”
의혹을 부추기는 제도에 대해선 손 볼 필요가 있다고 원로들은 주문했다. 특히 한 표 차이로 후보자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제도에선 ‘승복 문화’가 성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민주당 출신)은 “1명의 승자가 전부 독차지하는 소선거구제에선 사표(死票)가 대거 발생해 패배자의 의구심이 커진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도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득표율은 5.4%밖에 차이가 안 났는데 국회의석 수가 71석이나 벌어지다 보니 승복이 어려운 것 아니냐”고 했다.
적게는 한 자릿수 표차에서, 많아 봤자 수천표 사이에서 당락이 갈리는 접전지일수록 패배한 후보자가 느끼는 불합리함이 커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 선출)로 바꾸면 그런 의혹은 사라지게 된다”며 “지금은 상대방을 악마로 매도하는 공격력 센 사람만 뽑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국민의힘 출신)도 “소선거구제에서는 제도가 양극화와 대립을 부추긴다”며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면 광역시 단위에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민주당 출신)은 “한 지역에서 5명씩 뽑게 되면 소수의 참여가 가능해진다”며 “다양성이 확보되면 생각이 다른 걸 인정하게 되지만 (승자독식 구조에선) 죽기 살기로 싸우며 정치가 사라진다”고 했다.

“공정성 기준으로 사전투표제 보완해야”
사전투표 제도를 일부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보수계 원로를 중심으로 나왔다. 현재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사전투표에 대한 불만이 뒤섞여 있는 상태인데 이를 구분해 일부 타당한 지적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승용 전 부의장은 “사전투표와 본 투표 사이에 시차가 있다 보니 표심이 왜곡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선거 막바지 표심이 사전투표에 반영이 안 될 수 있어 차라리 본 투표 기간을 늘리는 게 더 공정해 보인다”고 말했다.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도 “투표는 한 날에 하는 게 (공정의) 대원칙”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신뢰 문제를 제기하는 제도는 손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국민의힘 출신)은 “편의성을 이유로 도입한 사전투표제를 다수가 원한다고 해서 지속해선 안 된다”며 “(선거제도는) 국민 전체가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선 소수 의견을 제도적으로 받아주는 게 민주주의”라면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저토록 반발하는 상황에선 저쪽의 타당한 주장을 일부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도 잘못…관리·감독 개선해야”
부정 경력채용 등이 드러난 선관위에 대해선 한목소리로 질타를 쏟아냈다.
양승함 교수는 “‘고위급 자녀를 밀어 넣는 조직이라면 누군가 내부 서버에 침투해 치밀하게 조작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 점에서 선관위가 잘못했다”며 “그런 의심이 증폭되다 보면 선거 결과까지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전 의장도 “(헌법 기관이라는 이유로) 장기간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끼리 지내게 한 건 지혜롭지 못한 조치”라며 “선관위에 대한 정례 감독은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있는데 상시적인 관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수사기관을 통한 강력 조치를 주문했다.
황우여 전 부총리는 “더 문제가 되는 건 법관들이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것”이라며 “선거 사무에 불만이 있을 때 법원에 심사 청구를 해야 하는데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관들이) 의자를 돌려 (재판석에) 앉게 된다. 다른 판사가 해당 재판을 맡는다 해도 (동료 판사의 사무를) 심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표 전 의장은 “선관위에 독립 지위를 준 건 옳지만 관리가 미숙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신뢰받을 수 있도록 보강해야 한다”며 “다만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으면 과거 3∙15 부정선거처럼 정부·여당에 흔들릴 수 있으니 선관위의 독립 지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각계 원로 명단은 다음과 같다. (가나다순)
△김진표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재판연구원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관련기사>
<1회>부정선거 불복의 역사
①[단독] 23년 간 지속된 선거불복 소송…그때의 기록들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09519365
②보수는 왜 사전투표를 믿지 못할까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10511025
<2회>부정선거 주장 팩트체크
①분류 때마다 달라지는 개표 숫자 ‘오류’ 아닌 ‘정밀함’…결론은 사람 손으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10517153
②선거인명부도 조작했다?…117세가 명단에 있던 이유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11504916
③“우리가 중국 해커라고요?”… 선관위 간첩 체포는 없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11506831
④‘소쿠리’부터 ‘특혜 채용’까지…불신 자초한 선관위, 감시·견제 커진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50411508221
<3회>선거의 시작, 여론조사가 불안하다
①[단독] 과태료 50만원 내면 그만?…‘믿지 못할’ 여론조사업체, 관리감독도 ‘엉망’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4027022?ntype=RANKING&type=journalists
②들쭉날쭉 여론조사… 민심인가 조작인가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4027121?type=journalists
<4회>부정선거를 보는 국회의 시선
①“소송은 부정선거 의혹 해소 적합한 방식 아냐…정치권이 나서야”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4027148?cds=news_media_pc
②“부정선거, ‘지평설’과 유사…국민의힘 신앙촌 정치 중단해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4027243?sid=100
<5회>‘부정선거’ 아닌 ‘신뢰선거’로 <끝>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