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급진전하는 듯 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등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의 주무기라 할 관세 폭탄을 꺼내들어 대(對)러시아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눈도 깜짝 안 하는 모습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력 격차를 감안하면 시간은 무조건 러시아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부터 ‘트럼프가 푸틴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2022년 2월 본격적인 침공 개시 후 3년이 넘는 기간 러시아군은 상당히 넓은 우크라이나 땅을 점령했다. 러시아와의 접경 지대에 위치한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 4개주(州)가 사실상 러시아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러시아가 지난 2014년 강탈해 11년간 불법으로 점유 중인 크름 반도까지 더하면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5분의 1을 러시아에 빼앗긴 셈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종전 협상을 중재하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옛 영토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으니 우크라이나 국민 입장에선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낄 법하다.
1871년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 패했다. 독일은 강화 조약을 체결하며 프랑스 동부 접경 지역의 알자스·로렌 두 주를 자국 영토로 합병했다. “이제부터 알자스와 로렌 주의 학교에서는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니 아무쪼록 열심히 들어주세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 속의 교사가 실의에잠긴 채 학생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오늘까지 프랑스인으로 살다가 내일부터 갑자기 독일인으로 살아야 한다니, 알자스·로렌 주민들이 느꼈을 황망함을 채 헤아리기 어렵다.

영국 BBC 방송이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점령지에 거주 중이거나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과 접촉해 작성한 기사를 보도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점령지 주민들은 러시아 시민권 및 여권 취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발급받지 않으면 의료 서비스 이용이 어렵고 자유로운 이동 또한 힘들다고 한다. 거리에는 온통 푸틴의 얼굴 그림과 러시아어 구호가 적힌 선전물뿐이다.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언론 활동은 전면 금지됐다. 종전 협정이 체결되는 날 점령지 내 학교들에선 마지막 우크라이나어 수업이 이뤄질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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