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가톨릭 교회는 교황 선출을 위한 전통 절차인 ‘콘클라베(Conclave)’에 들어간다. 교황직이 공석임을 알리는 ‘사도좌 공석(Sede Vacante)’이 선포된 직후 시작되는 이 절차를 위해 전 세계 추기경단이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이게 된다. 성당 문이 굳게 닫히는 순간부터, 추기경들은 휴대전화나 인터넷 같은 외부 소통 수단을 전면 차단한다. 오로지 신앙과 양심, 성령의 인도를 따라 투표하기 위해서다.

콘클라베의 기원은 13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 선종 뒤 후임자를 뽑는 데 무려 3년이나 걸린 일이 있었다. 추기경들이 한결같이 합의하지 못하자, 당시 주민들은 추기경들을 문 잠근 회의실에 가둬버리고(콘클라베·이탈리아어로 자물쇠 아래), 식량도 제한하며 압박을 가한 끝에 교황이 선출됐고 1274년 리옹 공의회에서 그 정신이 콘클라베 제도로 공식화됐다.
이후 1800년 교황 비오 7세를 선출했던 ‘베네치아 콘클라베’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혼란에 휩싸인 시기에, 피난지였던 베네치아 섬 수도원에서 강행됐다. 1846년 교황 비오 9세 선출 당시에는 회의 시간이 이례적으로 짧아 단 이틀 만에 선출자를 확정해버렸다. 반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별 추기경의 정치적 견해나 교회 개혁 문제 등이 얽히면 순탄치 않은 경우도 있었다.
현대에 확립된 절차로는 교황청 국무원과 추기경 자문회의가 함께 ‘일반회의’를 열어 장례미사와 조문, 교황 장례식 등의 준비를 마친 뒤, 80세 미만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만 비밀회의에 들어간다. 하루 최대 네 차례(오전·오후 각 두 번) 표결하며, 전체 투표권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새 교황이 탄생한다.
개표 결과 당선자가 없으면 검은 연기가, 선출되면 하얀 연기가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피어난다.
콘클라베를 거쳐 선출된 새 교황은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즉 ‘로마와 전 세계에’라는 전통 축복 인사와 함께, 곧바로 자신이 쓸 교황명을 택하고 교황으로서 권한을 즉시 행사한다.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처럼 앞선 교황이나 성인의 이름을 따르거나 전혀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대개 사목 방향과 신념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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