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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복한 이슬람 왕조…찬란한 문명의 흥망성쇠

입력 : 2025-04-26 06:00:00 수정 : 2025-04-24 20: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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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의 역사/ 마이클 피셔/ 최하늘 옮김/ 이옥순 감수/ 더숲/ 2만9000원 

 

무굴 제국은 ‘세계의 정복자’ 칭기즈칸과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의 정복에서 출범했다. 1526년 중앙아시아 출신의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하고 세운 이슬람 왕조로, 약 3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부를 일구어 번영을 누리다 1857년 막을 내렸다. 인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평가되지만, 사실 공식적으로 ‘무굴’이라는 국명을 사용한 적은 없다. ‘무굴’이라는 이름은 바부르와 그 후손이 속한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몽골을 뜻하는 페르시아식 표현이다.

바부르 이후 아크바르, 자한기르, 샤자한, 알람기르로 이어지면서 17세기 제국의 전성기를 맞는다. 동시대 중국을 제외하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였다.

마이클 피셔/ 최하늘 옮김/ 이옥순 감수/ 더숲/ 2만9000원 

부의 축적이 가능했던 것은 지정학적 위치 덕분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중국, 멀리는 유럽을 잇는 비단길과 동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해상 교역로의 중심에 위치한 제국은 교역의 요충지로 풍요를 누렸다. 그 부를 바탕으로 황제들은 예술과 문학, 건축을 아낌없이 후원했고, 이는 곧 찬란한 문화 전성기를 불러왔다. 특히 아크바르 황제가 닦은 제국의 토대 위에서 자한기르와 샤자한 황제는 무굴 예술과 건축을 한층 정교하고 세련된 형태로 꽃피웠다. 타지마할, 델리의 붉은 요새, 아그라 요새 등은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걸작들이며, 오늘날까지도 그 찬란한 영광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같은 시기 강력한 이슬람 제국으로는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 제국이 있었다. 무굴 제국이 이들과 달랐던 점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종교적 간극이었다. 지배자는 이슬람을 따랐지만, 압도적 다수의 백성은 힌두교 신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굴 제국은 배척이 아닌 포용, 동화가 아닌 융합을 택했다. 힌두 전통과 페르시아 양식이 만난 무굴 세밀화, 이슬람 건축 위에 힌두 조형미가 더해진 웅대한 무굴 건축, 힌두교 경전과 대서사시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고,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려 한 시도 등. 무굴 제국의 유산은 이후 영국 식민 통치와 현대 인도 국가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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