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모병제는 답인가, 또 다른 고민인가…선택의 기로에 선 병역 [박수찬의 軍]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 세계뉴스룸

입력 : 2025-04-25 09:45:00 수정 : 2025-04-25 14:20:23

인쇄 메일 url 공유 - +

대한민국은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다. 헌법과 병역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어떤 형태로든 병역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2000년부터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모병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유지와 첨단무기 개발, 모병제에 대한 공감대 등에 따른 것이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이래로 대선 국면마다 모병제가 언급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충남 세종시 금남면 남세종 예비군훈련장에서 지난해 4월 25일 실시된 통합방위훈련에서 32사단 기동대대 요원들이 국가중요시설 테러를 위해 침투한 적에 대한 격멸작전을 펼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번 대선에서도 대권 주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모병제를 제안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는 징병제와 모병제를 섞은 선택적 모병제를 제시했고, 김동연 후보는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수 후보는 징·모병 혼용제를 제안했다.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도 “모병제를 확대하고 일당백 하는 전문 병사를 채용해 월급 많이 주는 게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병역을 개인의 뜻에 맡기는 모병제는 더 자유로운 병역제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인 방식으로 군을 채운다는 것은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경제·사회·정치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병역제도다. ‘우리가 어떻게 이 나라를 지키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그만큼 무겁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육군 장병들이 숲속에서 수색훈련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자율과 비용, 모병제 핵심 변수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행하는 모병제의 가장 큰 명분은 자율성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실시된 국민개병제는 조국을 지키는데 국민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근대 국가 형성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용병으로 전쟁을 치렀던 과거와 달리 복무 의욕이 충분했던 국민개병제 하의 프랑스군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는 지금은 모병제가 끊임없이 거론된다. 모병제는 누구나 입대해야 하는 군대가 아닌,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군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병역의무 이행을 큰 부담으로 여긴다. ‘군복무 경험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고령층과는 인식차가 크다. 

 

모병제는 개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복무자의 만족도와 복무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병역=희생’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병제가 유지되려면 자진 입대할 인원을 모집하고, 장기간 복무하도록 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윤석열정부에서 병사 급여가 200만원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전면 모병제 또는 선택적 모병제를 도입하려면, 병사보다 더 높은 소득과 복지 및 직업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힘들고 위험한 직업군인의 길을 기꺼이 선택할 사람을 충분하게 확보하기가 어렵다.

육군 장병들이 화생방 상황에서 피해를 입은 장병들에 대한 처치를 훈련하고 있다. 육군 제공

2023년 기준으로 한국군 상비병력은 47만 7000명. 이 가운데 병사는 약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병사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후 하사로 임관해서 일정 수준의 보수를 받으며 6~48개월간 연장복무를 하는 임기제부사관 처우를 기준으로, 병사의 절반 가까이를 모병으로 채운다면 모병에 응한 병사의 초봉은 하사 1호봉보다 높은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소 수조원의 추가 비용이 매년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상승률에 맞춰 급여를 인상한다면, 지출 규모는 더욱 커진다. 부사관과 장교의 급여 인상 및 복지 개선도 필수다. 인건비 지출 규모가 예상치를 훨씬 넘을 수 있다.

 

따라서 모병제 도입에 앞서 재원 마련 대책과 국민 부담 증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병제가 정착하려면 입대자를 모집하는 것과 더불어 중도 이탈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모병제는 높은 전문성을 지닌 군인들이 오랜 기간 복무함으로써 군대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형태는 부사관과 장교, 군무원 등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군인이라는 직업이 국내에서 어느 정도의 이점이 있는지를 가늠할 척도 중 하나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이 최근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 1분기 육군 부사관 희망전역 및 휴직 현황’에 따르면, 정년이 남았음에도 전역을 신청한 부사관 수는 2021년 1분기 315명에서 2025년 1분기 66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휴직 신청자도 2021년 1분기 527명에서 올해 1분기 1276명으로 급증했다.

 

반면 같은 시기 부사관과 임기제부사관 임용자는 감소하고 있다. 신규 부사관 임용은 2021년 1분기 2156명에서 올해 1분기 749명으로, 임기제부사관 신규 임용은 2021년 1분기 1493명에서 올해 1분기 523명으로 감소했다.

육군 장병들이 무인수색차량과 함께 교량을 건너고 있다. 육군 제공

역대 정부에서 개인 휴대전화 사용, 급식단가 인상, 생활관 개선 등의 조치를 지속하면서 병사 복무 여건은 개선되어 왔다. 특히 윤석열정부에선 병사 급여가 빠르게 인상됐다.

 

반면 간부의 처우개선 속도는 빠르지 않은 상황이다. 낮은 당직근무비나 이사사화물비 등의 문제가 여전하다. 민간 사회의 일자리나 소방·경찰 등 유사 직종과 비교할 때 수입이나 처우 등에서 격차가 크다.

 

군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대국민 인식이 매우 좋을 때, 군의 비전이 청년층에게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을 경우엔 대규모 재정투입을 하지 않아도 지원율을 높일 수 있다. 명예나 자아실현 등을 중시하는 청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선택적 또는 전면전 모병제를 정상 운용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모병제를 도입했던 스웨덴, 대만은 병력 부족 문제에 직면해 전투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웨덴은 2010년 모병제를 도입했다. 스웨덴 정부는 모병제 정착을 위해서 병력 모집 등에 대한 조치를 사전에 설정하고 모병제를 실시했으나, 지원자가 부족했다.

 

2010년 당시 모병제를 통해 매년 5300명을 모집하려고 했지만, 지원자는 2400명에 불과했다. 결국 2018년 징병제를 부활했다.

 

리투아니아도 2008년 모병제를 도입했지만, 지원자가 적었다. 모병제 기간에는 목표치의 3분의 1 정도만 충원할 수 있었다. 군 규모는 1만명을 밑돌았고, 2015년 징병제를 부활한 이후에야 군대 규모가 크게 늘었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 특수임무반 요원들이 24일 초동조치 능력 극대화 등을 위한 육군 제11공수특전여단과의 합동 훈련에서 내부소탕 훈련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위협 분류가 병역제도보다 우선해야

 

일각에선 병역제도의 변화보다 국가적 위협 수준과 유형에 대한 분석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병제를 거론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례가 유럽이다. 유럽은 냉전 시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으로서 대규모 상비병력을 유지, 옛소련과의 전면전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냉전 종식으로 전면전 위협이 사라지고, 아프리카 등 옛 식민지에서의 분쟁 및 9·11 테러로 인한 대테러 위협이 두드러지자 서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모병제로 전환을 했다.

 

테러 대응이나 제3세계 분쟁 개입 등은 신속한 전개가 가능한 소수 정예 부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오랜 기간 전문적인 훈련이 가능한 모병제를 통해 우수한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적지 않았다. 모병제를 선택한 유럽 국가가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면서 징병제를 재도입하는 국가가 늘어났다. 국가간 전면전 위험에 맞서려면 대규모 상비병력과 예비병력이 필수다. 단기간 내 군 규모를 대폭 확대하려면 징병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2013년 국가 예산 문제 등으로 모병제를 실시했으나 2014년 징병제를 재도입했다. 

육군 병사들이 유격훈련을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령과 동부 돈바스의 친러시아 반군에 맞서려면 대규모 병력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징병제를 부활하고 직업군인 비중을 확대하면서 전문성과 기술력을 높였다. 

 

그 결과 2012년 18만4000명이던 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2월엔 25만명으로 늘었다.

 

리투아니아, 스웨덴, 라트비아 등도 징병제를 재도입하면서 병력 규모가 상당히 늘어났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고려한 조치다.

 

우리나라에선 모병제 논의가 국민의 병역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국가안보 측면에서 검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 기조 속에서 국가안보를 지탱하는 군 전력과 규모 유지라는 현실적 과제가 중시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반도에선 남북간 우발적 충돌방지 역할을 했던 9·19 군사합의가 유명무실해졌고,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 유지를 위한 무기 개발과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더불어 대만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도 지속되는 모양새다.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 승조원들이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출항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유럽은 본토의 전면전 위협이 크게 감소했을 때 모병제를 실시했고,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두드러지자 징병제로 재전환했다. 자국의 위협 수준과 형태에 따라 병역제도가 변화한 셈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남북 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양측이 상호 군비통제를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할 정도로 신뢰구축이 이뤄진다면, 모병제 도입에 필요한 여건은 마련되는 셈이다.

 

다만 국가안보 측면에서 남북 관계만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대만 해협 갈등과 미·중 전략경쟁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가 있다. 이를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위협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병력규모를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병역제도를 수정·개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모병제 도입은 단순한 병역제도 개편이 아닌, 국가가 어떤 안보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방향 설정이다.

 

한국처럼 지속적인 안보 위협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병력 충원과 전시 동원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병역제도에 손을 댄다는 것은 군과 안보 전략, 예산, 사회적 인식 등이 함께 바뀌어야 하는 대전환이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어떻게 지키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
  • 조이현 '청순 매력의 정석'
  • 에스파 지젤 '반가운 손인사'
  • VVS 지우 '해맑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