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재무·통상장관 ‘2+2’ 협의 결과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조치 종료일인 7월 8일 이전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의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USTR)가 참석했다. 이번에 양측은 논의 시한과 의제 등 협상의 기본 틀에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는 게 우리 정부 설명이다. 최 부총리는 협의 후 브리핑에서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질서 있는 협의를 위한 양국 간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데 (이번 협의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 설명대로라면 6월 3일 차기 대통령선거 이후 출범할 새 정부가 관세 폐지를 비롯한 통상 현안, 조선·에너지 중심의 투자 및 산업협력 등 포괄적 합의를 미국과 일괄 타결하는 수순을 밟게 될 전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 체제에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섰다가 자칫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첫 단추는 무난하게 끼운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관세정책이 조변석개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하는 만큼 돌발 변수에 대비해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될 것이다.
당장 이번 협의 결과에 대한 미국 측 반응부터 우리와는 온도 차를 보였다.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배석한 베선트 장관은 한국과의 협의 결과와 관련,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우리는 이르면 내주 양해에 관한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에 이르면서 기술적인 조건들(technical terms)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에 따르면 양국은 ‘7월 패키지’ 도출을 목표로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협의의 방식, 범위를 정하기 위해 다음 주 중 실무 협의를 진행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미국 측이 ‘이르면 내주 양해 합의에 이르러 기술적인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낸 데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간다.
외신에 따르면 미 정부는 일본, 인도와의 관세협상에서 시간이 더 필요한 쟁점은 추후 논의하고 큰 틀의 잠정 합의부터 서두를 것이라고 한다. 우리를 상대로도 양해각서(MOU)와 같은 식으로 잠정 합의부터 신속하게 끌어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MOU는 체결 당사자들 간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여기에 담기는 ‘기술적인 조건들’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면 향후 협상력이 약화될 수도 있어 빈틈없이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앞서 일본을 상대로 한 협상과는 달리 미 측은 이날 협의에서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한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관세협상에 대해 “군대는 우리가 말할 또 다른 주제이며, 우리는 그 어떤 협상에서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간 ‘원스톱 쇼핑’을 선호한다며 동맹국을 상대로 관세를 비롯한 무역적자, 산업협력 현안과 더불어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 지불 문제를 연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앞으로 한국과의 협상이 불리하게 전개된다 싶으면 언제든지 방위비 분담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협상에서 신속한 합의를 기대하고, 방위비는 별도로 논의하기로 한 것은 경제 운용 지지율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국내 상황에 쫓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무차별적인 고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불안과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여론을 협상의 조기 성과로 달래야 하는 만큼 당장은 방위비 문제까지 함께 거론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 미국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