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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評議)에서 합의(合議)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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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6 13:09:58 수정 : 2025-04-26 13: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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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평의’(評議)를 찾아보면 ‘서로 교환하여 평가하거나 심의하거나 의논함. 또는 그런 결과’라는 풀이가 나온다. 한마디로 의논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일반인은 거의 쓰지 않는 이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다름아닌 헌법재판소다. 헌재소장을 비롯해 재판관 9명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위헌법률심판 등 심리 중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는 행위가 ‘평의’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원래는 보통명사이지만 실제로는 ‘헌재 재판관들의 의논’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건물 3층에 재판관들의 평의(評議)가 열리는 회의실이 있다. 그곳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불과 20여일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이 서울 종로구 헌재 청사 3층에 있는 평의실에 집중됐다. 재판관 한 자리가 결원인 가운데 8명이 거의 매일 이곳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결정 방향을 놓고 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선고 전에 결론이 유출될까봐 도청 방지 장치를 새로 설치하고, 재판관이 아닌 헌법연구관이나 헌재 일반 직원의 출입은 엄히 금했다. 바깥에선 탄핵 찬반 의견이 4 대 4로 갈렸다느니, 6명은 파면하자고 하는데 2명이 기각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느니,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지난 4월4일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단행했다. 재판관 8명 전원일치의 파면 결정이었다. 4 대 4라느니, 6 대 2라느니 떠든 사람들로서는 겸언쩍음을 넘어 당혹감마저 느꼈을 법하다. 철저한 보안 덕분에 평의실 안에서 이뤄진 논의 내용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은 것이다. 그간 윤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든지 하는 이유로 ‘탄핵에 반대할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며 보수 진영에선 ‘찬사’를, 진보 진영에선 ‘비난’을 받았던 재판관들은 속으로 크게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의실에서 있었던 일은 영원히 비밀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건물 11층에 대법관들의 합의(合議)가 열리는 회의실이 있다. 이곳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결론이 내려질 예정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탄핵심판 종료와 더불어 헌재 3층을 떠난 국민의 시선이 이제 일제히 서초구 대법원 청사 11층을 향한다. 그곳에 조희대 대법원장의 집무실과 더불어 ‘합의’(合議)가 이뤄지는 대법관 회의실이 있어서다. 헌재에선 평의라고 칭하는 것이 법원에선 합의로 불린다. 2심에서 무죄가 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뒤 대법관들은 수시로 합의를 갖고 쟁점을 검토하는 중이다. 앞서 헌재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대법원도 합의실 내 도청 방지 장치를 점검하고 재판연구관 등 대법관이 아닌 이들의 접근을 엄격히 차단하는 중이다. 대법관들의 합의 결론이 오는 6·3 대통령 선거 이전에 내려질 것인지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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